시조 강 화 (疆 華)는 한나라 광무제 때의 사람으로 전하며 관향은진주 단본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선계는 고증할 문헌이 없다.
진주는 경상남도 (慶尙南道)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청동기시대 유물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시대부터 사람이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한시대에는 변진의 소국인 고순시국(古淳是國)이었으며, 가야시대에는 고령가야 영역에 포함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백제 때 거열성(居烈城)이었던 진주는 문무왕(文武王) 때 신라의 영토가 되어 거열주(居烈州)라고 하였다. 삼국통일 후 685년(신문왕 5)에 청주(菁州)로 고치고 총관을 두었다. 757년(경덕왕 16)에는 9주 5소경제(九州五小京制) 실시로 강주도독부(康州都督府)가 되어 1주, 11군, 31현을 관할하는 대읍(大邑)이 되었다. 그 뒤 혜공왕(惠恭王) 때에 다시 청주(菁州)로 개칭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청주에서 다시 강주로 환원하였고,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 진주목이 되었다. 995년(성종 14) 전국이 10도(道)로 개편되면서 진주로 고치고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정해군(定海軍)이라 하고 산남도(山南道)에 속하게 했다. 1012년(현종 3)에 절도사를 없애고 안무사를 두었다가 1018년에 안무사제도를 폐지하고 진주목으로 복구하면서 강성군(江城郡:丹城) · 하동군을 속군으로 , 사주현 · 악양현 · 영선현 · 진해현 · 곤명현 · 반성현 · 의령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 1310년(충선왕 2)에 진주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진주목으로 회복되었다.
조선시대 1392년(태조 1)에 한때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가 되기도 하였으나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어 서부 경남 일대를 관할하였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싸움 등으로 진주가 정치 · 경제 · 행정 · 군사 요지임이 확인됨에 따라 1603년(선조 36)에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이 창원에서 진주로 옮아왔다. 당시에는 진주를 진강(晉江) · 청주 (菁州) · 진산 (晉山)이라고도 하였다.
1895년 23부제 실시에 따라 진주부(晉州府) 진주군이 되었고, 1896년 13도제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어 도청소재지로서 관찰사가 상주하였다. 1910년에 진주군 진주면(晋州面)이 되었다가 1925년에 도청소재지가 부산으로 이전하였다.
1931년 진주면이 읍(邑)으로 승격한 데 이어 1938년에는 진주군 도동면(道洞面)과 평거면(平居面)의 5개리, 나동면(奈洞面)의 1개리가 편입되었다. 1939년 도동면 · 거평면을 편입하여 진주읍이 진주부가 되고 나머지 지역은 진양군으로 개칭되었다 . 1949년에 진주부가 진주시로 개칭되었으며, 1974년에는 진양군 정촌면(井村面) 가좌리(加佐里)와 호탄리(虎灘里), 나동면의 귀곡리(貴谷里)를 이관받았다.
1995년 1월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진주시와 진양군이 합쳐져 도농 복합형 통합시가 되었다. 현재 진주시는 구(舊)진주시의 망경 · 강남 · 칠암 · 본성 · 남성 · 대안 · 중안 · 봉곡 · 상봉동 · 상봉서 · 봉래 · 수정 · 장대 · 옥봉남 · 옥봉북 · 상대 1~2 · 하대 · 상평 · 초전 · 장재 · 평거 · 이현 · 판문 · 가호의 24개동과 문산읍 및 내동 · 정촌 · 금곡 · 진성 · 일반성 · 이반성 · 사봉 · 지수 · 대곡 · 금산 · 집현 · 미천 · 명석 · 대평 · 수곡의 15개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1930년에 경남 통영군 우동리에 1가구가 살고 잇는 것으로 기록되었으나, 1985년 경제기획원늬 조사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남한에만 427가구에 1862명으로 집계되었다.
진주 강(彊) 씨는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4,374 가구에 13,322 명으로 성씨내의 순위는 1 위이며 전체 본관별 인구 순위는 315 위이며, 강(彊) 씨는 4,375 가구에 13,328 명으로 전체 성씨 순위는 102 위인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