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충주 (忠州) 외에 괴산(槐山)이 문헌에 나타나 있으나 충주의 분파로 보인다.
원래 강씨는 중국 성씨로 진(晋)나라의 대부(大夫) 강일(强 )의 후예라고 전하는데, 언제 한국에 들어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역사상 인물로 통일신라시대의 유학자이며 문장가인 수(首)가 있으나 그는 나마(奈麻) 석체(昔諦)의 아들이니 석씨였을 것으로 보인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에는 전국에 34가구가 있었으며, 85년도 국세조사에서는 인구 901명으로, 성별순위는 274성 중 제163위였다.
강씨 (强氏)는 중국(中國) 천수(天水 : 감숙성 남동부 위수에 면한 상업도시)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이며, 강씨(强氏)의 본관(本貫)은 충주(忠州) 외에도 괴산(槐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충주 강씨(忠州强氏)의 세거지명(世居地名)에 불과하다.
충주는 충청북도 (忠淸北道)의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선사시대부터 높은 문화수준을 이루었는데, BC 4 ∼ BC 3세기에는 마한에 속하였다. 그뒤 마한이 백제에 병합되었으나, 다시 고구려에 속해 475년(장수왕 63) 국원성(國原城)이라 하였다. 신라 때인 557년(진흥왕 18) 국원소경(國原小京)이라 하였고, 757년(경덕왕 16) 중원소경(中原小京)이라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는 940년(태조 23) 충주라 개칭하였고, 983년(성종 2) 충주목(忠州牧)이라고 하였다. 995년(성종 14) 중원도에 예속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1395년(태조 4) 충청도 관찰사를 두었으며, 1896년(고종 33) 충청북도의 수부(감영)로서 관찰사를 두었다.
1908년(순종 2) 경부선에서 벗어나 있어 교통이 불편하다 하여 도청을 청주로 이전시키고 군수를 두었다. 1917년 충주군 읍내면이 충주면으로 개칭되었고, 1956년 7월 충주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중원군으로 분리되었다. 1963년 괴산군 상모면이 중원군에 편입되었다. 1989년 중원군 살미면 목벌리(木伐里)와 이류면 만정리(萬井里) 일부를 충주시에 편입하였다. 1995년 도 · 농 통합정책으로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하여 충주시가 되었다 .
2000년 현재 주덕읍, 가금 · 금가 · 노은 · 동량 · 산척 · 살미 · 상모 · 소태 · 신니 · 앙성 · 엄정 · 이류 면과 성내 · 충인 , 교현 · 안림 , 교현2, 용산, 지현, 문화, 호암, 달천, 봉방, 칠금, 연수, 목행 동 등 1개읍, 12개면, 12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