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驪州)는 경기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여주군은 상고시대부터 여러 부족이 산재하여 대신면 천서리(川西里)의 파사성(婆娑城)은 백제 초기의 유적이라는 전설이 있다. 초기에는 백제의 영토였으나 고구려의 세력이 커지면서 고구려 영토가 되어 장수왕(長壽王) 63년에 골내근현(骨內斤縣)이라 이름한 것이 여주 최초의 지명이다. 신라가 백제를 멸한 후에는 현 금사면(金沙面)에 술천성을 쌓고 고구려 축출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황려현(黃驪縣)이 된 후 1018년(현종 9)에 강원 원주에 영속되었다가 1214년(고종 1)에 영의(永義)로 개칭되었다. 1305년(충렬왕 31)에 여흥군(驪興郡)으로 승격한 후 1401년(조선 태종 1)에 음죽현(陰竹縣)의 북부를 편입하여 여흥부(驪興府)로 승격되면서 관할이 충청에서 경기로 변경되었다. 1414년(태종 13)에는 도호부(都護府)가 설치되었고 1469년(예종 1)에 세종대왕 능인 영릉(英陵)을 현 능서면 왕대리(旺垈里)로 옮기면서 천령현(川寧縣)을 병합, 여주목(驪州牧)으로 하고 목사(牧使)를 주재시켰다.
1501년(연산군 7)에 여주목의 관할구역을 없애고 충주부(忠州府)의 관할하에 두었다가 1895년 충주부 여주군으로 칭하였다. 1914년 부 · 군 · 면 폐합 때 경기 여주군이 되어 1개읍 9면을 관장하였다. 1963년 개군면(介軍面)을 양평군으로 편입시키고, 1970년 금사면 산북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9년 금사면의 산북출장소(山北出張所)를 산북면(山北面)으로 승격시켰으며, 1992년 북내면 오학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94년 강천면 대둔리가 강원도 원주시로 편입되었다.
1999년 현재 여주읍 · 점동면 (占東面) · 가남면 (加南面) · 능서면 (陵西面) · 흥천면 (興川面) · 금사면 · 대신면 (大神面) · 북내면 (北內面) · 강천면 (康川面) · 산북면 (山北面)의 1개읍 9개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1930년의 조사에서 함북 종성군에 3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한다.개(介) 씨는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29 가구에 86 명으로 전체 성씨 순위는 246 위인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