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後百濟)를 건국. 견훤이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가 뜰에서 밭을 갈고 어머니는 밥을 가져다 주느라고 아이를 숲 속에 두었더니 호랑이가 와서 아이에게 젖을 먹였다고 하며, 고기(古記)에는 그의 출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옛날 광주(光州) 북촌(北村)에 한 부자(富者)가 살았는데 용모가 단정하고 자태가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다. 하루는 딸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 매일 밤 자주색 옷을 입은 남자가 저의 침실을 찾아옵니다 . ” 라고 하니 아버지가 딸에게 이르기를 “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의 옷에 꽂아 두어라 ” 하여 딸은 그 말을 따랐다 . 날이 밝자 실을 따라 찾아가 보니 북쪽 담장 밑의 큰 지렁이 허리에 바늘이 꽂혀 있었다. 그로 인하여 태기가 있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甄萱)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본관은 황간 (黃磵) · 상주 (尙州) 2본이다.
황간견씨의 시조는 신라 말기의 사불성( 沙弗城:尙州 )의 호족 아자개(阿慈介)이고, 상주견씨의 시조는 아자개의 아들로 후백제를 세운 견훤(甄萱)이다.
아자개는 신라 진흥왕의 후손으로 본성이 이씨(李氏)였으나 견훤이 15세 때 성을 견으로 바꾸었다.
견훤은 그 후 900년(효공왕 4)에 완산주(完山州:全州)를 점령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1985년도 국세조사에서는 990명으로, 274성씨 중 158위를 차지하였다.
황간 (黃磵)은 충청북도(忠淸北道) 최남단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신라시대(新羅時代)에 소라현(召羅縣)이라 불리우다가 경덕왕(景德王 : 제 35대 왕, 742 ~765) 때 와서 황간(黃磵)으로 고쳐 영동군(永同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견 (甄) 씨는 340 가구에 1,141 명으로 전체 성씨 순위는 169 위인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