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구대림 (丘大林)은 원래 당나라 사람으로 663년 사신으로 일본에 가다가 동해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 하다가 평해 월송정 근처에 도착해 살았으며, 구대림이 살았다는 곳을 구미진(丘尾津)이라 부른다. 고구려때 벼슬이 좌복야상서에 이르렀다. 그후의 내력은 알 수 없다가 고려 공민왕때 민부전서를 지낸 구선혁을 1세조로 하고 본관을 평해로 하였다.
경북 울진군 기성면에 있다.
구씨 (丘氏)는 주(周)나라 초기의 정치가인 강태공(姜太公)의 후예(後裔)로
산동성(山東省) 창락현(昌樂縣)에 위치한 영구(營丘)라는 지명의 <구(久)>자(字)를 성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하남성(河南省)에 연원을 두고 제태공(齊太公)이 봉해진 땅이름
영구의 <구(邱)> 자를 자손들이 성으로 삼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 나라 구씨(丘氏)는 중국 당나라 사람인 구대림(久大林) 장군이 서기 663년(신라 문무왕 30, 당 고종 용삭 3)에 일본에 사신으로 가다가 동해에서
풍랑을 만나 평해의 월송정(月松亭) 부근에 표착(漂着)하여 해안의 남쪽 언덕 미포(美浦)에 터를 잡아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후 600여 년간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어, 고려 공민왕조에 이방실(李芳實) 장군과 함께 홍건적을 토벌하여 공신에 책훈되고 민부 전서(民部典書 : 6부에 속한 정 3품 벼슬)에 오른 구선혁(丘宣赫)을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관향(貫鄕)을 평해로 삼아 계대하여 왔다.
평해는 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 , 고대에는 파조로 불리다가, 삼한 때 변한에 속하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고우이군(古于伊郡), 신라 우진(于珍) 소속이었고, 통일신라 때 울진이라 칭하고 군으로 삼았다. 고려시대에는 울진군에 속한 평해를 평해군으로 분리 승격시켰는데, 평해군은 고구려의 근을어(近乙於)로서 그렇게 고쳐 부른 것이다.
1914년 2개 군을 합해 울진군으로 고친 뒤, 1963년 1월 1일부터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관할이 넘어갔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복벽운동으로 인해 울진군이 현으로 되었다가 갑오개혁 때 다시 울진군이 되었다. 읍성을 두고 울진포령이 통치하였으며 수군만호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