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씨는 본래 중국의 송나라 사람인 국량(鞠樑)이 고려 인종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공민왕조에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고, 그의 아들 국유(鞠 )는 1369년(공민왕 18) 부통사가 되어 도통사 최영과 함께 탐라를 토격(土擊)하고 병부 상서 겸 판의금부사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사(節死)하였다
그후 유의 맏아들 무(珷)가 두 아우 성(珹)과 황을 데리고 담양으로 세거(世居)하여 후손들이 담양에 세거(世居)함으로써 담양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국씨 (鞠氏)는 중국(中國) 여남(汝南)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송(宋)나라 출신인 국 양이 고려중엽(高麗中葉)인 인종(仁宗) 때 동래(東來)하여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역임한 후 치사(致仕)하고, 담양(潭陽)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면서 우리나라 국씨(鞠氏)의 연원(淵源)을 이루었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증보문헌비고」등의 기록에 의하면 국씨(鞠氏)의 본관(本貫)은 담양(潭陽)과 영광(靈光)을 비롯하여 복성(福城:전남보성지방) · 진주 (晋州) · 대구 (大邱) · 부령 (富寧) 등 6본(本)이 있는 것으로 전(傳)하나 담양(潭陽)을 제외한 본관(本貫)은 미상(未詳)이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전국에 1,090가구가 있었는데, 그 중 전북 완주(完州) · 익산 (益山) · 고창 (高敞) 일대에 454가구, 전남 담양 · 곡성 (谷城) ·
장성(長城) 일대에 나머지가 집단거주하여 총가구수의 90 %가 전남 · 전북에 분포되어 있었다.
1960년도 조사에서는 9,489명으로 성별 순위가 258성 중 제91위였고, 85년도 조사에서는 3,721가구로 274성 중 제94위였다.
담양 (潭陽)은 전라남도 북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조선시대의 담양도호부(潭陽都護府)와 창평현(昌平縣)이 1914년 병합된 곳이다. 봉산면 · 무정면 이북지역은 대체로 옛 담양도호부 영역이고 , 창평면 · 고서면 · 대덕면 · 남면 · 수북면 등 남부는 옛 창평현 지역에 해당한다 . 1895년 지방제도 개정으로 담양과 창평은 군이 되어 남원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13도제 실시로 전라남도에 속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창평군의 두입지(斗入地)인 갑향면이 장성군에 편입되었다.
봉산면 제월리 등 담양군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이 지역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 같다. 또 화순 등 인근지역에서는 청동기 및 철제시대의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조선시대 1758년(영조 34) 추성지는 지금의 무정면 일대를 삼한시대의 술지현(述只縣) 자리라고 전하고 있다.
백제 때의 27개 군 200개 성 중에서 추자혜군을 말하며 지금의 창평면은 전라남도 동북쪽에 위치하여 굴지현(屈支縣)에 속하였다. 금성산성과 담주산성도 200개 성 중의 하나인 듯하다. 조선시대의 추성지는 금성산성이 삼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전하고 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추자혜군에서 추성군으로 개칭하였다. 백제 때의 율지현(栗支縣)은 율원현(栗原縣)으로 바뀌어져 추성군에 속했다. 창평은 기양현(祈陽縣)으로 개칭하여 무주(현 광주)의 영현이 되었다.
995년(고려 성종 14) 추성군을 담주라 개칭하고 도단련사를 두었다가 1018(고려 현종 9) 담주 도단련사를 없애고 담양군이라 개칭하였다. 동시에 율원현 및 창평현과 함께 무주(현 광주)에서 나주로 소속되었다. 1172년(명종 2)에는 감무(監務)를 두었고, 1391년(공양왕 3)에는 원율현(현 금성면 원율리)을 병합하였다.
조선시대 때 국사 조구의 고향이라 하여 1395년(태조 4)에 군으로 승격되었으며, 1413년(태종 13)에는 담주에서 담양으로 개칭되어 도호부가 되었다. 그러나 1728년(영조 4)에 현(縣)으로 강등되었다. 1895년(고종 32) 전국을 23부(府) 331군(郡)으로 나눌 을 때 남원부(南原府) 관할하에 있었으며, 1905년(광무 9)에 담양부를 담양군으로 고치고 1908년(순종 2)에 폐지된 옥과군 일부가 담양군에 합하여졌다.
1914년 군면폐합 때 창평군이 폐지되고 군내 12개면이 5개면으로 폐합되어 담양군에 병합되었다. 이때 광주군의 갈전면 · 대치면과 장성군 갑향면이 대전면으로 개칭되어 이관됨으로써 담양군은 13개면으로 조정되었다.
1918년에는 무면(武面)과 정면(貞面)이 무정면으로 통합되고, 구암면을 봉산면으로 개칭하여 12개 면이 되었다. 서기 1943년 담양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지금의 1읍 11면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1931년 구암면을 봉산면으로, 1932년 무면과 정면을 합하여 무정면으로 개칭했다. 1943년 담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관할지역은 담양읍과 봉산면 · 고서면 · 남면 · 창평면 · 대덕면 · 무정면 · 금성면 · 용면 · 월산면 · 수북면 · 대전면 등 1읍 11개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1961년 10월1일자로 담양군 동리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제2호), 담양군 이장정수조례(제3호)를 각각 제정공포하여 1읍 11면 139리를 관할하였으며, 1976년에 담양호와 광주호 건설로 용면 산성리와 청흥리가 수몰됨으로서 2개리가 줄어 137개의 법정리를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0년 현재 1읍 11면 137리로 이루어져 있다.
황의 현손 경례 (經禮)는 조선 전기 세종 때 사간(司諫)으로 있다가 은퇴한 후 학문에만 몰두한 학자인데, 그의 아들 거경(居敬) · 화경 (和敬) · 승경 (承敬) · 장경 (長敬) · 방경 (邦敬) · 치경 (致敬) 등 6형제 대에 이르러 크게 번성하였다.
이 밖의 인물로는 선공감정(繕工監正)을 지낸 갑손(甲孫), 중추부첨지사(中樞府僉知事)를 지낸 수성(守成), 수원부사(水原府使)를 지낸 지선(志善), 학자인 함(涵) · 민 (旻) 등이 있다.
담양 국 (鞠) 씨는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4,892 가구에 15,774 명으로 성씨내의 순위는 1 위이며 전체 본관별 인구 순위는 280 위이며, 국(鞠) 씨는 5,182 가구에 16,697 명으로 전체 성씨 순위는 98 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고양군 일원
전북 고창, 익산, 순창군 일원
충남 논산, 청양, 금산군 일원
전남 담양, 곡성, 장성군 일원
전북 전주시 일원
담양 (鞠) 담양국씨서울종친회 02-3487-2634 서울
담양(鞠) 담양국씨서울종친회 02-734-2639 서울 종로 -신교-50-1(2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