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씨 ( 國氏 ) 는 중국 ( 中國 ) 하비 ( 下 ● ) 에서 계출 ( 系出 ) 된 성씨 ( 姓氏 ) 로서 백제시대 ( 百濟時代 ) 에는 사 ( 沙 ) · 연 ( 燕 ) · 리 ( ● ) · 해 ( 解 ) · 진 ( 眞 ) · 목 ( 木 ) · 배 .백 ( ● ) 과 더불어 8 대성 ( 大姓 ) 으로 손꼽혔다 .
우리나라 국씨 ( 國氏 ) 의 본관 ( 本貫 ) 은 담양 ( 潭陽 ) · 대명 ( 大明 : 중국 ) · 금성 ( 金城 ) · 전주 ( 全州 ) · 풍천 ( 豊川 ) · 현풍 ( 玄風 ) · 영양 ( 英陽 ) 등 7 본 ( 本 ) 이 있는 것으로 전 ( 傳 ) 하나 상계 ( 上系 ) 를 고증 ( 考證 ) 할 문헌이 전하지 않아 계대 ( 系代 ) 를 상고 ( 詳考 ) 할 수 없다 .
국씨는 백제시대의 8대성 중 하나였다. 인물로는 611년(백제 무왕 12년)에
대신을 지낸 국지모와 고려 태조때 원외랑을 지낸 국현이 있었으나 현재의
국씨와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풍천 (豊川)은 황해도(黃海道)에 있었던 옛 지명으로 고구려 때 구을(仇乙) 또는 굴천현(屈遷縣)이라 불리웠던 것을 고려초에 풍주(豊州)로 고쳤으며 성종(成宗) 때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고, 서기 1018년(현종 9) 방어사(防御使)를 두었다. 조선 태조(太祖) 때 와서 처음으로 진(鎭)을 두어 병마사(兵馬使)로써 지주사(知州事)를 겸하게 하였다가 태종(太宗)이 풍천(豊川)으로 고쳤다. 그후 은율현(殷栗縣)과 합하여 풍율군(豊栗郡)으로 개칭하였다가 1895년(고종 32) 송화군(松禾郡)으로 합하였고, 별칭(別稱)으로 서하(西河)라 불리기도 하였다.
1930년도 국세조사 때에는 북한에만 9가구가 있었으며, 60년도 조사에서는 인구 178명으로 성별 순위가 258성 중 제178위, 1985년도 조사에서는 210가구로 274성 중 제159위였다.
2000년 인구총조사에서는 성씨별 순위 154위이며, 669가구에 2,18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본관은 담양 (潭陽) · 풍천 (豊川) · 현풍 (玄風) · 영양 (英陽) · 금성 (金城) · 대명 (大明) 등이 문헌에 전한다.
백제의 8대성(八大姓)인 사(沙) · 연 (燕) · 예 ( ) · 해 (解) · 진 (眞) · 국 (國) · 목 (木) · 백 ( )의 하나이다.
역대 인물로는 611년(무왕 13) 수(隋)나라에 들어가 조공하고 고구려 정벌을 논한 백제의 국지모(國智牟), 신라의 명승 국교(國敎), 고려 태조 때 원외랑(員外郞) 국현(國鉉)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