궉씨의 연원 (淵源)은 문헌(文獻)이 없어 정확(正確)히 상고(詳考)할 수 없으나, 조선중기의 학자(學者)이며 명신(名臣)인 이수광(李수光)이 시문집(詩文集)「지봉유설(芝峰類說)」에<순창에 궉씨가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고 일설에 의하면 호성이라고도 한다(淳昌有궉氏不知基所 自出或云本胡姓)>하고 기록되어 있고, 실학자(實學者) 이덕무(李德懋)의 저서(著書)「앙엽기(앙葉記)」에는 <선산(善山)에 궉씨촌(궉氏村)이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930년 국세조사(國勢調査) 때에는 경기도(京畿道) 용인(龍仁)과 충남(忠南) 보령(保寧)·청양(靑陽)·예산(禮山)·천안(天安) 등지에 20여 가구가 살고 있었으며, 1975년 인구조사(人口調査)에서는 전국(全國) 249개(個) 성씨(姓氏) 중 223위(位)였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57가구, 24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