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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뿌리 > 성씨의 유래 
「함열남궁(南宮)
남궁원청 (元淸)
남궁씨는 원래 중국 주나라 문왕 때 남궁자의 후예로서 고조선 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았다 . 그후 991년(고려 성종 10년)에 남궁원청이 대장군으로서 여진족을 백두산 이북까지 몰아낸 공으로 감물아(함열의 옛이름)백에 봉해짐으로써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함열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청 이후의 세계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의 후손인 남궁득회를 1세조로 하였다.

시조의 묘소는 충남 보령군 청라면에 있다.
본관은 함열 (咸悅) · 부윤 (富潤) · 남평 (南平) · 용안 (龍安) · 의령 (宜寧) · 자산 (慈山) 등 6본이지만, 주요 본관은 함열, 즉 지금의 전북 익산(益山)이다.
함열남궁씨의 시조는 BC 12세기경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멸망시키자, 기자(箕子)를 따라와 조선에 귀화한 은나라 사람이라고 하나, 사학계에서는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을 부인한다.
기자의 41대손 기준(箕準)이 익산에 도읍을 정하고 스스로 한왕(韓王)이라 칭하여 마한(馬韓)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남궁씨는 마한 사람의 후예인 것으로 생각된다.
전라북도 (全羅北道) 익산군(益山郡)에 속해있는 지명(地名)으로 일찍이 백제(百濟) 시대에 감물아현(甘勿阿縣) 이라 불리우다가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함열(咸悅)로 고쳐서 임피군(臨陂郡 : 지금의 옥구군 임피면)에 속하게 하였다. 조선(朝鮮) 태종(太宗) 때 이웃 용안(龍安)과 합하여 안열현(安悅縣)으로 고쳤고, 뒤에 다시 함열(咸悅)로 고쳤으나, 1913년 익산군(益山郡)에 병합되어 함열면(咸悅面)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맥을 살펴보면 득희 (得禧)의 아들 신(信)이 고려조에서 조적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벽상일등공신에 올랐고, 판도판서 경(璟)의 아들 민(敏)은 보문각 직제학 을 지내고 충목왕때는 정치관이 되어 왕에게 학문을 강론했다.

조선조에 와서는 소윤 우(祐)의 아들 계(啓)가 태종때 대호군에 올랐으며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한성부윤, 전라도 도절제사를 지내고 중추원 부사에 이르렀다.

특히 왕의 시강관으로 문명을 떨쳤던 찬(璨)은 군수 치(致)의 손자로 가문을 중흥시킨 인물이다.
그는 여러 벼슬을 거쳐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연산군의 난정을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 그후 무오사화때 김종직 등의 억울함을 신구(伸救)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용안에 유배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당시 그의 문명이 중국에까지 알려져 명나라에서는 그의 묘소에 세워질 인문석을 하사했는데 배로 운반도중 태풍을 만나 바닷속에 잠겨 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신통하게도 인문석이 서해안 바닷가에 떠올라 전북 익산군 성당면 갈산리에 있는 그의 무덤 앞에 세워졌다고 한다.

찬은 슬하에 필(弼), · 익 (翼), · 숙 (淑), · 열 (說) 4 형제를 두었는데 모두가 관직을 역임하여 가문의 융성을 이루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함열 남궁씨(咸悅南宮氏)는 남한에 총 3,874
가구, 16,227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 , 동면 월운리
충남 공주군 장기면 무능리

전북 익산군 성당면 갈산리
남궁 (南宮)    남궁씨종친회    02-954-3636    서울 -도봉-도봉1-589-3   
함열    함열남궁씨종친회    02-3493-9913    서울 -도봉-도봉1-589-3   
함열(南宮)s    남궁    011-773-3693    안산시 이동 699-11    nkhs1330@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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