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노은경 (路誾儆)은 중국 원나라
한림 학자로서 고려 공민왕때 노국대장 공주를 따라 우리나라에 와서 개성에
정착하여 살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개성으로 하였다.
본관은 태원 (太元) · 북청 (北靑)
· 대원 (大元)의 3본이다.
원래 중국의 성씨로 황제가 후손을 노(路)에 봉함으로써 생긴 성으로 전하는데, 한국에 들어온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개성 (開城)은 경기도 북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려의 수도였으며, 처음에는 송악군, 송도,
개경, 부소갑, 동비홀, 촉막군 등으로 불리웠다.
919년(고려 태조 2) 개성과 송악을 합쳐 개주(開州)라 불렀고, 960년 황도(皇都)로,
그후 여러 변천을 거쳐 개성군이 되고, 개성시가 되었다.
후손들은 노은경 (路誾儆)을 시조로 하고
개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계승하였고,
조선 초기에 시조의 손자 순련(順連)이 좌찬성을 역임하여 가세를 일으켰으며
순련의 아들 영창(永昌)은 우찬성에 올라 명성을 떨쳤다.
그외 주부를 지낸 세행(世行: 영창의 손자)과 감찰을 지낸 붕만(鵬萬), 동지중추부사 사직(師稷)
등이 대표적이며 성운(聖運)은 장례원정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개성노씨(開城 路氏)는 남한에 총 312가구,
1,48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