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淸)나라 덕종(德宗)
때 사람으로 형부 시랑(刑部侍郞)을 지냈으며, 선조(先祖)가 조선조에서 벼슬을
지내다가 화(禍)를 입고 교동(喬桐)으로 유배(流配)되어 그 곳에서 살았으나
후손들이 황해도(黃海道)로 이거(移居)하였다.
청 (淸)나라 덕종(德宗) 때 사람으로
형부 시랑(刑部侍郞)을 지냈으며, 선조(先祖)가 조선조에서 벼슬을 지내다가
화(禍)를 입고 교동(喬桐)으로 유배(流配)되어 그 곳에서 살았으나 후손들이
황해도(黃海道)로 이거(移居)하였다.
경기도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원래 고구려의
고목근현 (高木根縣)으로서 해중(海中)의 섬이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교동현으로 개명하여 해구군(海口郡)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시 대에도 계속하여
교동현이라 하였고, 1629년(인조 7)에 부(府)로 승격되었으며 수사(水使)가
부윤 (府尹)을 겸임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강등(降等)되어 강화군(江華郡)에
예속되었으며, 1914년 군을 폐하고 강화(江華)로 합(合)했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황해도 수안(遂安)
· 황주 (黃州) 등지에 30여 가구가 있었으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29가구, 10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