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당성은 중국 절강성 명주 사람으로서
그의 선대는 송나라 정종때의 승상인 각의 6세손이라 한다. 시조 당성은 원나라
말기에 병난을 피해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고려때에 사평순위부평사 등을 역임하고
조선왕조 개국공신으로 호조, 병조, 공조를 역임하였다. 태종때에 밀양을 본관으로
하사받아 후손들이 밀양을 본관으로 하고있다.
당씨 (唐氏)는 중국(中國) 진 양(晋陽
: 산서성 기영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서 본래 도당씨(陶唐氏
: 제요를 일컫음)의 후예(後裔)가 당(唐)나라 제후(諸侯)에 봉해져서 나라
이름을 성(姓)으로 삼은 것이 시초(始初)가 된다고 한다. [밀양당씨세보(密陽唐氏世譜)]에
의하면 우리나라 당씨(唐氏)는 위(魏)나라 때 대부(大夫)였던 당 저(唐雎)의
후손으로, 송(宋)나라 휘종조(徽宗朝: 북송의 8대 임금, 재위기간: 1101
∼ 1125)에서 승상(丞相)에 올랐던 당 각(唐恪)의 7세손 당 성(唐誠)이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출신으로 원(元)나라 말기에 동래(東來)하여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후 그는 조선개국(朝鮮開國) 초에 공조 전서(工曹典書)로서
외교문서(外交文書)를 전담관장(傳擔管掌)하였고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되어 녹권(錄券)과 상전(賞田) 15결(結)을 하사(下賜)받았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개성 유수(開城留守)를 거쳐 공안부윤(恭安府尹)에 이르러 밀양(密陽)을 사적(賜
籍)받아 본적(本籍)을 밀양으로 하게 되었다.
본관은 밀양(密陽) 단본이다.
시조 당성(唐誠:1337 ∼ 1413)은 중국 송(宋)나라 휘종(徽宗) 때의 승상 당각(唐恪)의 6세손으로 원(元)나라 말기에 병란을 피해
고려에 귀화하여 조선 개국 후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의 녹권을 하사받았다.
경상남도 (慶尙南道)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원래 삼한시대(三韓時代)에 변한(弁韓)의 일부로 가락국(駕洛國)에
속하였으며, 신라(新羅) 법흥왕(法興王: 제23대 왕, 재위 기간: 514
∼ 540) 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밀성군(密城郡) 으로 개칭되었다. 고려(高麗) 때 와서는 995년(성종
16)에 밀주(密州)로 하였고, 1390년(공양왕 2) 밀양부(密陽府)로
승격, 그 후 여러 차례의 변천을 거듭하다가 1895년 밀양군(密陽郡)으로
개칭 하였다.
[밀양당씨세보]에 의하면 우리나라 당씨는
위나라 때 대부였던 당저(唐雎)의 후손으로,
송(宋)나라 휘종조에서 승상에 올랐던 당각(唐恪)의 7세손 당성(唐誠)이 절강성 명주 출신으로 원나라 말기에 동래하여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후 그는 조선개국초에 공조전서와 개성유수를 거쳐 공안부윤에 이르러 밀양을 사적받아 본적을 밀양으로 하게 되었다. 특시 당성(唐誠)은 학문에
정통하여 문명을 떨쳤으며, 야사(野史)의 기록에는 태종때 영의정에 오른 성석린을 위기에서 구해준 일화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고려 말에 왜구가 승천부(강화도)에 침입했을때 이를 격퇴시키고 개선한 양백연이 법률을 어겨
죽음을 당하자 막료로 있던 성석린이 연루되었는데, 최영장군이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하자
사평부평사로 있던 [당성]이 말하기를 " 죄는 법에 맞게 다스리는 것인데, 법문이 이와 같거늘
법률을 고치라 하니 법률이 먼저요? 공(公)이 먼저요? " 하면서 성석린의 억울함을 알고 가볍게
다스렸다. 그 은혜를 잊지못한 성석린은 [당성]이 세상을 뜨자 매우 슬퍼하며 " 생전에 마땅히
갚아야 할 은혜를 죽었다고 어찌 잊을 것인가, 일생동안 다 못갚아 죽어도 못잊겠네 " 라고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당성]은 2남1녀를 두었는데, 맏아들 몽현(夢賢)은 중추원사를 역임했고,
차남 몽량(夢良)은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여 가맥을 이었다.
인물을 살펴보면 유징(有徵)이 통정대부로 영광군수를 역임했고 그의 아들 3형제가 뛰어났다.
맏아들 언우(彦佑)는 상호군을 지냈고, 둘째 언필(彦弼)은 경원 도호부사를 역임했으며,
막내 언량(彦良)은 임진왜란때 무공을 세워 선무원 종공신에 녹훈되어 크게 명성을 떨쳤다.
한편 동추공 몽량(夢良)의 후손에서는 충좌위 부사과를 지낸 효원(孝元)과 그의 아들 적(勣)이
유명했으며, 윤문(允文)은 중종때 봉상시정, 사복시정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