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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뿌리 > 성씨의 유래 
「성주도(都)
도 계 (都稽)
중국 여양 (黎陽 : 지금의 직예성 대명도) 사람으로 한무제(漢武帝) 때 복파장군(伏波將軍)으로 여가(呂嘉)의 반란을 평정하여 도씨(都氏)로 수성(受姓)하였다.

도씨(都氏)는 중국 여양 사람인 도계(都稽)가 한무제때 도씨(都氏)로 수성한 것이 시초가 된다고 하며, 우리나라 도씨는 [도계]의 후손 도조(都祖)가 고구려에 건너와서 동명왕때 [유리]가 왕위에 오르는데 크게 공헌한 후 우리나라에 살게 되면서부터 문호가 열렸다.

그러나 [전고대방]과 [조선씨족통보] 등의 문헌에는 백제 개루왕때의 정승 도미(都彌)를 도씨의 시조로 기록하고 있는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이에 대한 일화가 전해진다.

도미는 본래 백제 사람인데 그의 아내는 아름답고 정결하기로 소문났었다.
왕이 그 소문을 듣고 그의 아내를 유혹하려다가 실패하자 도미의 두눈을 빼고 배를 태워 멀
추방해 버렸다. 그후 도미는 고구려 땅에 가서 나물과 풀뿌리를 캐어 먹으며 살다가 그를 찾아온 아내와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성주 고을에서 학문과 도덕의 가문으로 알려져온 도씨는 도진 (都 陳)이 정승의 벼슬에 올라 성산부원군에 봉해지고 식읍으로 하사받은 성주에 세거하여 후손들이 성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본관은 문헌에는 16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오늘날 성주(星州) 단본으로 알려졌다
성주 (星州)는 경북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때 본피현이라 하다가 그후 벽진군, 경산부, 광평군, 성주목, 성산현, 등으로 변천되어 오늘의 성주군이 되었다.
고려조에서 가문을 빛낸 인물을 살펴보면 1세조의 아들 충박(忠朴)이 전리상서를 역임했고 공조전서를 지낸 유도(有道), 성산군에 봉해진 유덕(有德) 두아들이 성주도씨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다. 특히 순(順)의 현손인 홍정(洪正)은 도씨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인물로서, 칠곡부원군 효안(孝安)의 세째 아들로서 문하시중에 오르고 칠곡부원군에 봉해져서 크게 명성을 떨쳤다. 그의 아들 길부(吉敷)도 문하첨의찬성사에 오르고 성산부원군에 봉해졌으나 이인임의 축출사건에 연루되어 화를 당했다.

한편 두문동 72현의 중심인물인 응(膺)은 문하첨의찬성사를 지냈으나 기사화변으로 아버지가 화를 당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홍주의 노은동에 은거하였는데, 후에 이성계가 어릴적 친구인 그에게 다섯차례나 벼슬을 내렸으나 끝까지 거절하고 불사이군의 충절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절의에 감복한 태조는 청송당이란 호를 내려 치하했고, 운천서원과 경양사에 제향되었다.
[성주도씨족보]에 의하면 고려 원종때 전리상서를 지낸 도순(都順)을 1세조로 하고, 전서공파, 판서공파, 중랑장공파, 시승공파, 찬성공파, 시중공파, 봉차령공파 등 크게 7파로 갈라져서 세계 를 계승하고 있다.
1960년도 국세조사에서는 인구 2만 9112명으로 258성씨 중 제65위를 차지하였고, 1985년도 조사에서는 1만 1191가구로 제66위를 차지하였다.
경북 울진군 원남면 덕신리
경북 청도군 각남면 녹명동

경북 달성군 서면 용산동
경북 성주군 벽진면 해평동

경북 군위군 의흥면 이지동
충남 천원군 목천면 석천리

경북 경산군 하양읍 교동
충남 논산군 연산면, 벌곡면 대덕리

경남 고성군 회화면 삼덕리
성주    성주도씨서울종친회    02-3453-1565    서울 강남 -역삼-824(역삼빌딩16층(2106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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