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씨 (杜氏)의 연원은 중국 경조에서
시작되었으며, 송나라 태종때 병부상서를 지낸
두경영(杜慶寧)을 시조로 한다. 「두릉두씨세보」에 의하면 그는 송나라 진종의 왕위계승
문제에 관한 상소로 직간하다가 진종에게 미움을 받아 소주자사로 좌천되자 아들 지건(之建)과 [지방] 형제를 데리고 정처없이 배를타고 바다를
건너서 1004년 궁지현(전북 김제군 만경면)에 표착하여 고려에 귀화하였다.
묘는 전북 부안군 하서면 석불산에 있다.
두씨 (杜氏)의 연원(淵源)은 중국 경조(京兆:
협서성 관중도 장안현)에서 시작되었다. 「두릉두씨세보(杜陵杜氏世譜)」에 의하면
시조 두경녕은 고려에 귀화하여 고려 목종(穆宗)은 두경녕(杜慶寧)에게 우사관(右司官)의
벼슬을 내리고 궁지현(宮池縣)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한 후 두릉군(杜陵君)에
봉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두씨(杜氏)의 문호(門戶)가 열리게 되었고,
후손들은 두경녕(杜慶寧)을 시조로 하여 봉군지(封君地)인 두릉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
두릉 (杜陵)은 중국에 있는 지명으로
현재의 위치는 알 수 없다.
두릉두씨 (杜陵杜氏)는 지건(之建)의
아들 수총(遂寵)이 고려조에서 대호군에 올랐고,
손자인 방(邦)은 1122년 문하시랑 평장사에 이르러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그외 병마절제사 영(瑛), 문하시중 현(玹)의 형제와 절도사 무지(茂枝), 울산병사 을지(乙枝)가 고려시대에 가문을 빛낸 인물이며, 조선조에서는 태종때 병마우후를 지낸 승손(承孫)과 세종때 효행으로정려(旌閭)를 받은 세준(世俊) 부자가 유명했다.
두릉두씨 (杜陵杜氏)는 1960년 국세조사
당시 2,902명이 있었고, 1975년 조사에서는
802가구였으며,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 총 1,163가구, 4,83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