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매씨 (忠州梅氏)는 고려 때에 벼슬하여
관직이 행성제공(行省提控)에 이른 매군서(梅君瑞)를 시조로 한다. 매군서(梅君瑞)의
아들 매원저(梅原渚)는 조선 태종때에 가선대부 의주목사(嘉善大夫 義州牧使)에
이르렀으며 매원저(梅原渚)의 아들인 매우(梅佑)가 세종 ∼ 세조때에 통사
(通事), 상호군(上護軍) 등 여러 벼슬을 거쳐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이르렀으며 천추사(千秋使)로 중국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1439년(세종 21) 윤달 2월 2일에 매우(梅佑)가 세종(世宗)임금에게 본관(本貫)을 내려 달라고 상언(上言)하니 세종임금이 충주(忠州)로
관향을 내려 주었다.
선계 (先系)는 초간(草磵) 권문해(權文海)가
저술한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의 기록에 그 조상이 중국 산동성(山東省)
제남(濟南)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매씨(梅氏)의 성(姓)을 하사(下賜)받고
관향(貫鄕)을 충주(忠州)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충청북도 (忠淸北道) 중원군(中原郡)의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에는 국원성(國原城) 또는 미을성(未乙省)
· 완장성 · 탁장성 (託長城) 등으로 불리우다가 신라에 병합되어 진흥왕때
이곳에다 소경(小京)을 두었고 경덕왕(景德王)이 중원경(中原京)으로 고쳤으며,
고려조에 이르러 태조(太祖)가 충주(忠州)로 개칭하였다. 그후 고종(高宗)
때 국원경(國原京)으로 고쳐 불렀고, 1550년(명종 5) 유신현(維新縣)으로
부르다가 조선 선조(宣祖) 즉위년에 다시 충주(忠州)로 환원되었다.
역사에 기록된 매씨 (梅氏)의 인물로는
조선 중종때 황간(黃澗) 출신인 매한손(梅漢孫) 이 손가락을 잘라서 아버지의 병구완을 하여 그 효행으로 나라에서 정문(旌門)을 내렸다고 한다.
매군서(梅君瑞) 고려 때에 벼슬하여 관직이 행성제공(行省提控)에 이르렀다.
매원저(梅原渚) 조선 태종때에 가선대부 의주목사(嘉善大夫 義州牧使)에 이르렀다.
매우(梅佑) 세종 ∼ 세조조 동지중추원사 (同知中樞院事) 역임
매좌(梅佐) 세종 ∼ 세조조 강음 현감 (江陰縣監),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역임
매보남(梅輔男) 예종조 부장(部將) 역임
매준(梅俊) 성종조 충찬위(忠贊위) 역임
매씨 (梅氏) 분포상황은 1960년 국세조사
때 경기도 부천, 시흥, 안성 등지와
전북 김제, 충남 논산에 90여명이 살던 것으로 집계되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46가구, 23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