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비밀번호
회원가입  |  아이디, 비밀번호 찾기
2026년
음 : 09-17
양 : 10-27
서기:2026년
단기:4359년
불기:2570년
위아래 - 세상 끝난 뒤에도 -
 
 home > 뿌리 > 성씨의 유래 
「남양방(房)
방현령 (房玄齡)
우리나라 방씨의 시초이며 , 당(唐)나라 양공(梁公) 방현령(房玄齡)이 634년(당태종 정관8, 고구려 영류왕17) 고구려의 주청(奏請)으로 동래(東來)하여 남양(南陽)에 사적(賜籍)하였다.
본관은 남양 (南陽) · 수원 (水原) 외에 천령(川寧) · 포천 (抱川) · 서산 (瑞山) 등 약 20본이 문헌에 전하지만, 모두가 대종인 남양방씨의 분파 세거지(世居地)로 알려져 있다.
남양방씨의 시조는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계홍(季弘)으로, 본디 당나라 양공(梁公) 현령(玄 )의 7대손으로 고구려에와서 귀화하였다고 한다.
방씨는 중국 청하(淸河)에서 계출된 성씨로서 요(堯)임금의 아들 단주(丹朱)가 방후(房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지명을 성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방씨의 시초는 방현령이 고구려 영양왕조에 동래하여 남양에서 사적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후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후손들은 고려조에서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삼중대광보국공(三重大匡輔國公)에 오른 방계홍(房季弘)을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선조(先祖)의 사적지(賜籍地)인 남양(南陽)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어왔다. 방씨의 관향(貫鄕)은 남양을 비롯하여 수원(水原), 남원(南原), 온양(溫陽), 밀양(密陽), 양산(梁山)등 23본까지 문헌에 전해지나 모두가 남양 방의 세거지명(世居地名)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양 (南陽)은 지금의 경기도 수원과 화성군 일원을 포함한 지역의 옛지명으로 고구려 때의 당성군인데 신라 경덕왕이 당은군으로 개칭하였고, 1310년에 남양부가 되었다.
조선 말기에 남양군이 되어 인천부 관할이 되었다가 그땅을나누어 영흥면, 대부면은 부평군에 편입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수원군에 합하였다.
남양 방씨의 인물로는 계홍의 아들 의강 (儀康)이 고려때 평장사를 지냈으며, 손자 진유(珍儒)는 추밀원 부사를 거쳐 예부상서를 지냈다. 한편 상호군 주(柱)의 아들 사량(士良)은 공양왕때 직제학을 거쳐 전의시승을 지냈고, 그의아들 3형제중 장남 구행(九行)은 군자감정을, 차남 구달(九達)은 군자감 부정을 역임하여 대를이어 가세를 일으켰고, 사량의 증손 귀원(貴元:봉교를 지냄)과 옥정(玉精:세자시강원 문학)이 유명했다.

특히 계문(戒文)의 아들 귀온(貴溫)은 중종조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참봉과 사간원의 정언이 되었으나 기묘사화로 스승이 사사(賜死)되자 벼슬을 버리고 학문에만 진력했으며, 응현(應賢)은 선조때 농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실학자로 명망이 높았다.
1960년도 국세조사에서는 인구 1만 3991명으로서 성별 순위는 258성 중 80위였고, 85년도 조사에서는 5,371가구로 순위는 274성 중 80위였다.
경기도 수원시 일원 , 화성군 남양면 일원
전남 담양군 대전면 병풍리

전북 남원군 주생면 지당리, 영천리
전남 고흥군 도양면 가야리

전북 남원군 금지면 입암리, 대강면 일원
전남 보성군 겸백면 운림리

전북 정읍근 내장면 용산리
전남 승주군 송광면 대흥리
 
 
 
 
위원회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제휴문의 | 광고문의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민주로 32번길 29 (쌍촌동)     상호명 : 광산탁씨전자족보운영회
단체고유번호: 410-80-40462  대표: 탁인석    전화번호 062-374-0045
© HUMEN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