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창업 (高麗創業)의 주역(主役)으로
본래는 태봉국(泰封國)의 마군장수(馬軍將帥)로 있다가 궁 예(弓 裔)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고 민심이 어지러워지자 신숭겸(申崇謙:평산 신씨의 시조) · 배현경
(裵玄慶:경주 배씨의 시조) · 홍 유 (洪 儒) 등과 함께 왕 건(王 建)을
추대(推戴)하여 고려를 세웠다. 그후 장군 환선길(桓宣吉)과 임춘길(林春吉)
등의 반역 음모를 적발하여 이를 평정(平定)시켰으며, 벼슬이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고 혜성부원군( 城府院君)에 봉해졌다.
면천 복씨는 시조 복지겸이 혜성부원군에
봉해졌으므로 , 후손들은 복지겸(卜智謙)을 시조로 받을고 본관(本貫)을 면천(沔川)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고려조에 10여 명의 평장사(平章事)와 관면잠영(冠冕簪영)이
끊이지 않아 거족(巨族)으로 일컬어졌다. 우리나라 복씨(卜氏)의 선계(先系)는
당(唐:후당923 ∼ 936) 나라의 학사(學士) 한 분이 신라 말엽에 오계(五季:다섯
왕조에 걸쳐 문란해진 시대를 일컬음)의 난국을 피하여 바다를 건너 동래(東來)하여
면천(沔川)에 정착(定着)한 것이 시초(始初)가 되었다. 복씨의 본관(本貫)은
면천을 비롯하여 홍주(洪州) · 오천 (烏川) · 연주(延州 : 강원도 영월의
고호) · 평산 (平山) · 구성 (龜城) 등 10본이 있는 것으로 문헌(文獻)에
전해지나 면천을 제외한 나머지 관향(貫鄕)에 대해서는
상계(上系)를 고증(考證)할 기록이 없어 상고(詳考)할 수 없다.
우리나라 복씨(卜氏)의 선계는 당나라의 학사 한분이 신라 말엽에 오계(다섯 왕조에 걸쳐
문란해진 시대를 일컬음)의 난국을 피하여 바다를 건너 동래(東來)하여 면천에 정착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복씨의 본관은 면천을 비롯하여 홍주(洪州),오천(烏川),연주(延州 :
강원도 영월),평산(平山),
구성(龜城) 등 10본이 있는것으로 문헌에 전해지나 면천을 제외한 나머지 관향에 대해서는
상계를 고증할 기록이 없어 상고할 수 없다.
면천 (沔川)은 충남 당진군에 속해있던
지명으로 본래 백제때에는 혜군 또는 지비라 부르던 것을 신라 경덕왕이 혜성군으로
개칭하였고, 조선 태종때 와서 면천군으로 고쳤으나 후에
당진군에 속한 면천면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려조에서 무신으로
명성을 떨쳤던 규 (奎)가 1291년 원나라
태종의 둘째 아들 합단이 침입했을때 원주 방호별감으로 이를 격퇴시켜 크게 무명을 날렸으며,
그의 아우 기(箕)는 지주사을 역임하여 가문을 일으켰다.
한편 우부승지 성진의 아들 위룡(渭龍)이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홍주 여수동으로
돌아가 은거하며 절의를 지켰다.
그의 아들 한은 호조좌랑에 올랐으며 아버지 상(喪)을 당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3년동안
여막에서 시묘하여 세인들의 칭찬을 받았으며, 맏아들 오(吾)가 임천과 서천군수를 거쳐
충청도사에 올랐고, 막내 여(予)는 고원 군수)와 홍문관 직제학을 거쳐 대사헌을 지냈다.
한편 오(吾)의 아들 4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가세를 크게 일으켰는데
맏아들 승원(承元)은 남원부사를 거쳐 도승지에 올랐으며,
차남 승형(承亨)은 홍문관 부제학을, 세째 아들 승리(承利)는 제주목사을
막내 승정(承貞)은 예조참의와 황해 감사를 역임하여 함께 이름을 떨쳤다.
복씨 (卜氏)는 1960년 국세조사 당시
4,264명, 1975년에는 1,116가구로 집계되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1,794가구, 7,37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