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개국설화 (耽羅開國設話)」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기록에 의하면 아득한 옛날 탐라(耽羅)에는 본래 사람과 만물(萬物)이
없었는데 한라산(漢拏山) 북쪽 모흥혈(毛興穴)에서 세 사람과 신인(神人)이
용출(湧出)하였으니, 이들이 곧 부을나(夫乙那) · 고을나 (高乙那) ·
양을나 (良乙那)이다. 이들 삼신인(三神人)은 후에 벽랑국(碧浪國)으로부터
오곡(五穀)의 종자(種子)와 6축(六畜)을 가져온 세 사람의 미녀(美女)를
맞아 각각 아내로 삼고, 각기 활을 쏘아 화살이 맞닿는 곳에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게 되니 처음으로 탐라의 역사가 시작되어 문화(文化)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부씨 (夫氏)는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조선(朝鮮) 초에 진용부위(進勇副尉)로 별장(別將)을 지낸 부언경(夫彦景)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제주 (濟州)는 한반도의 남서 해상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대의 섬으로
명칭은 도이(島夷),주호(州胡),탐모라(耽牟羅),섭라(涉羅),탁라(탁羅),탐라(耽羅),제주(濟州) 등
시대에 따라 다르게 불려왔다.
조선 태종때 오랫동안 전래되어 온 성주, 왕자의 칭호가 폐지되고 조선의 실질적인 행정력
속에 포함되어, 1416년 한라산을 경계로 동쪽에 정의현(旌義縣), 서쪽에 대정현(大靜縣)을
설치하여 통치하다가 그후 몇 차례의 변화를 거쳐 제주도가 되었고, 1946년 도제 실시로
전라남도 관할하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현재 2시 2군 6읍 5면의 행정구역이 되었다.
가통을 지켜온 인물로는 언경 (彦景)의
증손 삼로(三老)가 세종때 통훈대부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 형제중 맏아들 유렴(有廉)은 어모장군으로 선조가 뿌리를 내린 제주도를 지켰고,
막내 유성(有成)이 육지로 건너가 경기도 연천 지방에 자리잡아 가세를 일으켰다.
한편 유렴(有廉)의 아들 세영(世榮)은 어모장군으로 슬하에 각(恪), 협, 열(悅), 신(愼), 픽,
홍(弘) 등 6형제를 낳아 이들이 제주6파의 파조가 되었으며,
9세손 응호(應豪)는 어모장군으로 사과을 지냈고,
승일(承日)은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으로 용양위 부호군을 역임하였다.
그밖의 인물로는 절충장군으로 첨지중추부사에 올랐던 만원(萬元)과
통정대부 만겸(萬謙)이 유명했고,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한 도성(道聖)은
영조때 효행으로 이름난 천겸(千兼), 대정현감으로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로 일컬어졌던
사민(士敏), 학문이 뛰어나 유림의 추앙을 받았던 도일(道一) 등과 함께 명성을 날렸다.
정조때 예조정랑을 거쳐 사헌부 장령에 오른 종인(宗仁)은 제주부씨가 자랑하는 인물로
그 공덕을 찬양받았으며 뒤에 성균관 사성에 이르렀고, 항희(恒熙)는 감찰을 역임하였으며,
한말에 독립운동가로 정사에 기록된 생종(生鍾)과 함께 제주부씨를 더욱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제주부씨(濟州夫氏)는 남한에 총 2,094가구,
8,56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면 상도리 , 하도리,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면 시흥리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면 세화리, 평대리
부씨 재경부씨종친회 02-720-0068 서울
종로 -송월-1-2(광화문스튜디오-가-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