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 노나라 빈모가라는
사람이 공자를 섬겼다고 한다 . 달성빈씨의 시조는 빈우광으로서 그는 빈모가의
후손으로 중국 송나라가 망하자 우리나라로 망명을 해서 학풍을 크게 진작시켰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이 이를 가상히여겨 수성군에 봉했다고 한다. 수성, 대구,
달성은 같은 본이다.
수성빈씨는 시조 빈우광 (賓 宇光)이
수성군에 봉해졌으므로 수성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빈씨(賓氏)는 중국(中國)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정확한 연원(淵源)은 알 수 없고,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의
기록에
의하면 주(周)나라 경왕(景王기 원전 544 ∼ 521) 때 대부(大夫)를 지낸 빈골주(賓骨周)의 후손 빈모가(賓牟賈)가 노(魯) 나라에서
성인(聖人) 공자(孔子)를 시중(侍中)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빈씨(賓氏)의
본관(本貫)은 수성을 비롯하여 육창(陸昌:영광지방), 대구(大邱), 안주(安州)
등 4본이 전하고 있으나 계대(系代)를 밝힐 수 없다.
수성 (壽城)은 대구직할시 수성동 지역의
고려시대 행정 구역명으로,
본래 위화군이었는데 신라 경덕왕이 수창군또는 가창군이라 하였고, 고려초에 수성현으로
고쳤다. 조선 태조때 대구에 속하였고, 현재 수성 1-4동을 이루고 있다.
빈씨 (賓氏)는 1960년도 국세조사
당시 2,186명, 1975년에는 504가구로 집계되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총 637가구, 2,64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관은 수성 (壽城) · 달성 (達城)
· 대구 (大邱) · 영광 (靈光)이 전하지만 수성은 달성의 옛 이름이고,
대구는 달성군에서 분립되었으므로, 수성 · 달성 · 대구는 달성빈씨로 일원화되었다
.
달성빈씨는 영광빈씨에 비해 인구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빈씨의 대부분은 달성빈씨로 알려져 있다.
빈씨는 본래 중국 성씨로서 주(周)나라 경왕(景王) 때 대부(大夫)를 지낸 골주(骨周)가 있었고, 노(魯)나라 때 모가(牟賈)라는 공자의
제자가 있었다.
달성빈씨의 시조는 우광(于光:賓氏譜에는 宇光으로 되어 있음)이다.
그는 모가의 후예로서 송(宋)나라의 한림학사였는데, 송나라가 망하자 귀중한 서적을 가지고 고려에 귀화한 것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