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승개 (承愷)는 연일에 대대로 살아온
선비로 선대는 알 수가 없다. 그는 고려 정종때 대장군을 지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연일으로 하였다.
광산승씨도 승개의 후손이며 광산에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광산으로 하였다.
연일 승씨의 시조는 승 개 (承 愷)로
고려 정종(靖宗:제10대왕, 재위기간:
1034 ∼ 1046) 때대장군(大將軍)을 지내고 문무를 겸전한 지장으로 명망을 떨쳤으며 평북 정주에 정착세거하면서 전세거지인 연일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시조의 23세손
박(撲)의 아들 진택(震澤)이 빈민구휼에 헌신하여
교동에 공적비가 세워졌고, 후손 요신(堯臣)은 시문에 능하여 김영록, 홍대양과 더불어
암탄에서 문명을 떨쳐 [신안삼고사]로 불리워졌다.
한편 낙행(樂行)은 박통한 학문으로 문하에서 영재를 많이 배출시켜 백당공 문홍(文弘)과 함께
사림의 존망을 받았으며, 낙원(樂元)은 효행이 뛰어나 나라에서 정려가 세워졌다.
그밖의 인물로는 학교를 세워 후학교육에 이바지했던 국진(國鎭)과 가재를 털어 빈민을
구휼하여 공덕비가 세워진 계복(桂馥)이 유명했으며, 윤장(允章)의 아들 영제(永濟)는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순절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연일승씨는 남한에 총 378가구, 1,50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산은 전남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무진주인데 757년(경덕왕 16) 무주로 고쳤다.
광산승씨는 [여지승람]에 광주의 토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시조는 고려 정종때 대장군을
역임한 승개(承 愷)로 전한다. 그러나 연일승씨에서도 승개를 시조로 받들고 있어 동원으로
추정되는데 상계를 고증할 문헌이 없어 정확하게 상고하지 못한다.
[광산승씨족보]에 의하면 시조 개(愷)의 아들 성구(聖구)와 손자 명복(命福)이 고려조에서
영의정을 지냈다고 하며, 8세손 교(敎:상명의 아들)는 1427년(세종 9) 진사시에 합격한 후
정언을 거쳐 봉렬대부로 남평 현감을 역임하여 주부를 지낸 봉선(奉先), 명수(명秀)와 함께
가세를 일으켰고, 설(渫)은 광해군때 선무랑으로 예빈시 주부를 지냈다.
그밖의 인물로는 경종때 증광문과에 급제한 정조(鼎祚)가 절충장군으로 첨지중 추부사를
지냈으며, 진복(進福)은 통정대부로 용양위 호군을 역임하여 광산승씨의 가통을 지켰다.
조선시대에 9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으며, 역대 인물로는 숙종 때 현감 이도(以道)와 찰방(察訪) 득운(得運), 정조 때 사성(司成) 논(論)과
형조좌랑 응조(膺祚) 및 전적(典籍) 헌조(憲祖) 등이 있다.
또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순국한 치현(致賢) · 영제 (永濟) 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