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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엄(嚴)
엄임의 (嚴林義)
본관은 영월 (寧越) 단본이다.
문헌에는 그밖에도 상주(尙州) · 하음 (河陰) · 광주 (廣州) · 파주 (坡州) 등 60여 본이 전하나, 모두가 영월엄씨의 분파이며 세거지(世居地)를 나타내는 데 불과하다.
엄임의의 묘소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동산에 있다.
영월 엄씨 (寧越嚴氏)의 시조(始祖) 엄임의(嚴林義)는 한(漢)나라 시인(詩人) 부양(富陽 : 一名 嚴子 先生)의 후예이며 당(唐)나라 상국(相國) 화음(華陰)의 일족(一族)이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당(唐)나라 현종(玄宗 : 제 6대 임금, 재위기간 : 712 ∼ 756)이 새로운 악장(樂章)을 만들어 이를 인근의 여러 나라에 전파하기 위해 보낸 파락사(波樂使)로, 신라(新羅)에 동래(東來) 하였다가 본국(本國)에서 정변(政變)이 일어나자 돌아가지 않고 지금의 영월 땅인 내성군에 안주(安住)한 것이 우리나라 엄씨의 시원(始源)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고려조에 와서 그를 내성군(奈城郡)
에 추봉(追封)하고 후손들에게 영월(寧越)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하자, 후손들이 그 곳에 살면서 영월(寧越)을 본관(本貫)으로 삼아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특히 엄씨의 관적지(貫籍地)인 영월읍 하송리(寧越邑下松里)에는 처음 엄시랑(嚴侍郞)이 정착하면서 손수 심었던 은행나무가 우리나에서 제일 크고 오래된 수령(樹齡)을 자랑하는 보수(寶樹)로 천연기념물 제 76호로 지정 되었으며, 신기하게도 이 은행나무는 경술국치(庚戌國恥) 때와 을유해방(乙酉解放) 시(時)에 동편의 큰 가지가 부러졌고, 6 · 25 동란시에는 북편의 큰 가지가 부러지는 등 국가의 대이변(大異變)이 있을 때마다 무언(無言)의 예시(豫示)가 있었다고 한다.
영월 (寧越)은 강원도 남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내생군인데 통일신라 경덕왕이 내성군으로 고치고 고려 초에 영월로 고쳐서 조선 1895년 영월군이 되었다.
영월 엄씨 (寧越嚴氏)의 시조 엄임의(嚴林義)는 한나라 시인(詩人) 부양의 후예이며 당나라 상국 화음의 일족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당나라 현종이 새로운 악장(樂章)을 만들어 이를 인근의 여러 나라에 전파하기 위해 보낸 파락사(波樂使)로, 신라에 동래 하였다가 본국에서 정변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금의 영월땅인 내성군에 안주한 것이 우리나라 엄씨의 시원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고려조에 와서 그를 내성군에 추봉하고 후손들에게 영월을 식읍으로 하사하자, 후손들이 그곳에 살면서 영월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특히 엄씨의 관적지인 영월읍 하송리에는 처음 엄시랑(嚴侍郞)이 정착하면서 손수 심었던 은행나무가 우리나에서 제일 크고 오래된 수령을 자랑하는 나무로 천연기념물 제 76호로 지정 되었으며, 신기하게도 이 은행나무는 경술년 국치 때와 을유 해방시에 동편의 큰가지가 부러졌고, 6 · 25 동란시에는 북편의 큰가지가 부러지는 등 국가의 대이변이 있을 때마다 무언의 예시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문호(門戶)가 열리게 된 영월 엄씨는 시조의 아들 3형제 대에 와서 장남 태인(太仁)이 고향을 지키며 군기공파(軍器公派)를 이루었고, 차남 덕인(德仁)은 한양으로 이주하여 복야공파조가 되었으며, 3남 처인(處仁)은 함경도로 이주하여 문과공파조(文科公派祖)가 되어 현재 그의 후손들이 북한에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후 대를 거듭하면서 참봉공계(參奉公系),교수공계(敎授公系)등 37계통으로 갈라져서 가문의 중흥을 이루었다.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문로는 11세손 유온(有溫)이 조선창업의 개국공신으로 가선대부에 올라 동지총제를 역임했고 판관 한저(漢著)의 아들 흥도(興道)가 절행(節行)으로 뛰어났다.
영월에 유폐되었던 단종이 화를 당하고 시신이 강물에 던져져 옥체가 둥둥떠 돌아다니는데
그러나 누구든지 시신을 거두면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 아무도 손대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영월호장이라는 미관말직에 있던 흥도(興道)가 관을 마련하여 선산(先山)에 장사 지내고 [좋은 일을 하고 화를 당하면 달게 받겠다]는 말을 남긴 후 영남지방으로 피했다.

후환이 두려워 세인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일을 한 흥도의 충절은, 선조때 그의 영웅성이 재평가되어 후손을 찾아 호역(戶役)을 면해주고 단종릉인 노산묘를 수호하게 하였으며, 현종때 우암 송시열의 건의로 비로소 그 후손들이 세상에 나와 벼슬에 등용되었다.
영조때 와서 정문(旌門)이 세워졌고, 공조참판에 추증, 순조때 자헌대부로 공조판서에 가자(加資) 되었으며 시호가 충의(忠毅)로 내려져, 사육신과 더불어 영월 창절사와 숙모전에 배향되었다.

한편 시조의 16세존 흔(昕)은 검열과 정자를 지냈고 호당에 뽑혀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으며, 수찬을 지냈다. 특히 그는 [동국문헌록]에 그 행적이 등재되어 영월엄씨를 더욱 빝냈으�? 흔의 현손 집(緝)은 도승지와 예조판서를 지낸후 좌참찬에 이르렀고, 장희빈의 처벌을 주장했으며, 청렴 결백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영월엄씨(寧越嚴氏)는 남한에 총 27,216가구, 114,19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화성군 태안면 능리
강원도 영월군 남면 북상리,조전리

겅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 팔괴리
함남 함주군 지곡면 흥서리

강원도 영월군 북면 문곡리
영월    영월엄씨중앙종친회    02-515-6331    서울 강남 -논현-56-6(2층)   
영월(嚴)s    25대조 석태祖 후손종친회    052-260-9443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덩리 537   
영월    영월엄씨성남종친회    031-751-3513    경기 -성남-수정-태평3-3752-4(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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