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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뿌리 > 성씨의 유래 
「의령여(余)
여선재 (余善才)
시조 여선재 (余善才)는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간의대부에 올랐었다. 그가 송나라에서 우리나라로 귀화해서 의령을 식읍으로 하사받고 의령에서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의령을 본관으로 하였다.
여씨 (余氏)는 본래 중국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이다. 우리나라 여씨(余氏)의 연원(淵源)은 조(趙) · 송 (宋)나라 때 이르러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오른 여선재(余善才)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 (高麗)에서 의춘군(宜春君) 에 봉(封)해지고 의령(宜寧) 땅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으면서 부터 이다. 그 후손들이 그 곳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 선재(善才)를 시조 (始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의령(宜寧)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나 상계(上系)가 실전되어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역임한 현경(玄景)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계대(系代)하고 있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여씨(余氏)의 본관(本貫)은 의령(宜寧) 외에도 12본이 나타나 있으나 이는 세거지(世居地)를 나타낸 것에 불과한 것으로 전한다. 여씨 (余氏)는 본래 중국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이다. 우리나라 여씨(余氏)의 연원(淵源)은 조(趙) · 송 (宋)나라 때 이르러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오른 여선재(余善才)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 (高麗)에서 의춘군(宜春君)에 봉(封)해지고 의령(宜寧) 땅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으면서 부터이다. 그 후손들이 그 곳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 선재(善才)를 시조(始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의령(宜寧)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나 상계(上系)가 실전되어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역임한 현경(玄景)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계대(系代)하고 있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여씨(余氏)의 본관(本貫)은 의령(宜寧) 외에도 12본이 나타나 있으나 이는 세거지(世居地)를 나타낸 것에 불과한 것으로 전한다.
경상남도 (慶尙南道)의 중앙, 낙동강 하류 서안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신라(新羅)의 장함현(獐含縣)인데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때에는 진주(晉州)에 편입되었다가 공양왕(恭讓王) 때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조(朝鮮朝)에 현(縣)으로 승격된 뒤 1895년 (고종 32)에 의령군으로 개칭되었다.
여씨는 고려 말과 조선 초에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 , 고려시대에 문과에 급제한 1세 현경(玄景)을 비롯하여 검교장군(檢校將軍)을 지낸 3세 직유(稷 ), 고려 말에 호부전서를 거쳐 조선에서 호조판서가 추증된 9세 중부(仲富), 태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황해도수군절도사를 지낸 10세 흥렬(興烈)과 숙천(肅川)목사 · 안주진병마절도사를 지낸 11세 원경(元暻),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12세 건(健) 등이 있다.
또 효자로 정문이 세워진 효제(孝悌)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문과급제자가 3명 나왔는데, 사간원정언을 지낸 효온(孝溫), 현감 · 직강을 역임한 상규 (尙珪), 봉상시첨정을 지낸 후( ) 등이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의령여씨(宜寧余氏)는 남한에 총 3,432가구, 14,110명이 살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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