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예악전 (芮樂全)은 고려 인종 때에
문화 찬성사로 부계(의흥)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부계라고 했다.
예씨 (芮氏)는 중국(中國)에서
왔다고 하나 정확한 문헌(文獻)이 없어 선계(先系)를 알 수 없다. 의흥
예씨(義興芮氏)의 시조(始祖) 예락전(芮樂全)은 문장(文章)과 덕망이 뛰어난
석학(碩學)으로 고려(高麗) 인종(仁宗) 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냈으며, 부계(缶溪 : 의 : 흥의 옛지명) 군(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의흥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문헌의 의하면 예씨(芮氏)의 본관(本貫)은 의흥(義興) 외에도 수원(水原), 남양(南洋), 청풍(淸風)등 18 본이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세거지(世居地)를 나타낸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의흥(義興) 단본으로
전한다.
의흥 (義興)은 경상북도 군위군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 여러차례의 관할변경이 있은후
1914년에 군위군에 속한 의흥면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승석 (承錫)을 들수
있는데, 그는 락전(樂全)의 8세손으로 한성부우윤을거쳐 동지중추부사를 지냈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아들 충년(忠年)은 경주부윤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이 외에도 훈련원 판관을 역임한 인상(仁祥)과 한성부 우윤을 지낸 몽진(夢辰),
첨지중추부사 흥래(興來) 등이 유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