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씨 (玉氏)는 중국에서 계출된 성씨로
우리나라 옥씨의 연원은 고구려의 요청에 의해
당나라에서 파견된 8재사(八才士) 중의 한 사람인 옥진서(玉眞瑞)가 신라에서 국학 교수를
역임하고, 의춘(의령) 군에 봉해져 의령에 정착 세거하면서 부터이다.
옥씨 (玉氏)는 중국(中國)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우리나라 옥씨(玉氏)의 연원(淵源)은 고구려(高句麗)의 요청에
의해 당(唐) 나라에서 파견된 8재사(八才士) 중의 한 사람인 옥진서(玉眞瑞)가
신라(新羅)에서 국학 교수(國學敎授)를 역임하고, 의춘(宜春 : 의령의 별칭)
군(君)에 봉해져 의령(宜寧)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면서 부터이다. 그
후 문헌(文獻)의 실전(失傳)으로 선계(先系)를 상고(詳考) 할 수 없어
후손들이 고려(高麗) 때 창정(倉正)을 지낸 옥은종(玉恩宗)을 일세조(一世祖)로
하는 계통과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한 옥 여(玉汝)를 일세조로 하는 계통과
갈라져서 본관(本貫)을 의령(宜寧)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문헌에
나타난 옥씨(玉氏)의 본관(本貫)은 17본으로 전하나 이는 세거지명(世居地名)을
나타낸 것에 불과한 것이며, 현재는 의령(宜寧) 단본(單本)으로 전한다.
경상남도 (慶尙南道)의 중앙, 낙동강
하류 서안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신라(新羅)의 장함현(獐含縣)인데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때에는 진주(晉州)에 편입되었다가 공양왕(恭讓王)
때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조(朝鮮朝)에 현(縣)으로 승격된 뒤 1895년
(고종 32)에 의령군으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규 (珪)가 고려에서
평장사를 역임하였으며,
학문이 깊고 청렴 결백했던 고(沽)는 조선 정종때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 정언, 교리 등을 역임했으며 청렴결백하여 사림(士林)에서 명망이 높았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의령옥씨(宜寧玉氏)는 남한에 총 4,622가구,
18,90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