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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순창옹(邕)

옹희태 (邕羲泰)

순창 (淳昌)은 전라북도(全羅北道) 남쪽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원래 백제(百濟)의 도실군(道實郡)인데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순화군(淳化郡: 일명 淳化郡)으로 고치고 고려(高麗) 때에는 순창현이 되어 남원부(南原府)에 속하였다가 1314년(충숙왕 1) 군(郡)으로 승격, 조선시대(朝鮮時代)에도 그대로 군(郡)으로 삼았다.

옥천(玉川) 순창의 별호(別號)이다.

순창 옹씨 (淳昌邕氏)의 시조(始祖)는 고려조(高麗朝)에서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지낸 옹희태(邕羲泰)로 전(傳)하며, 판관(判官)을 지낸 몽진(夢辰)을 중조(中祖)로 하고 있다.

그후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후손들은 명정(命廷)의 아들 은(誾)을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선조(先祖)의 세거지(世居地)인 순창(淳昌: 옥천의 옛 지명)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몽진 (夢辰)은 문장가(文章家)로 이름이 높았고 과거에 급제하여 음성(陰城)·청하(淸河)·운산(雲山)·황간(黃澗)의 현감(縣監)과 적용판관(籍用判官)·봉상시 판관(奉常寺判官) 등을 지내고, 충청도사(忠淸都事)·형조·예조의 좌랑(佐郞), 병조 정랑(兵曹正郞)을 역임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 (人物)로는 달행(達行)의 아들인 경신(景信)이 조선(朝鮮) 인조(仁祖) 때 이 괄(李 适)의 난(亂)을 평정(平定)하는데 공(功)을 세워

진무원종공신 (振武原從功臣)에 녹훈되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세운 공(功)으로 훈련원 판관 (訓鍊院判官)에 제수되었으며 효행(孝行)이 뛰어나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이외에도 학문(學問)이 뛰어나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된 기풍(基豊), 한말(韓末)에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택규 (宅奎),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한 봉규(奉奎)는 관찰부 주사(觀察府主事) 승규(勝奎) 등과 함께 순창 옹씨(淳昌邕氏)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옥천, 순창 옹씨(玉川,淳昌邕氏)는 남한(南韓)에 총 141가구, 57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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