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씨 (韋氏)는 중국(中國) 경조(京兆)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서 팽조(彭祖)의 손자가 위(韋)땅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고을 이름을 성(姓)으로 삼은 것이 시초(始初)가 된다.
우리나라 위씨(韋氏)는 중원(中原) 출신인 위수여(韋壽餘)가 960년(고려 광종 11) 동래(東來)하여 사선관(司膳官)을 거쳐 목종(穆宗)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으며, 현종(顯宗) 초에 치사(致仕)를 상소했으나 허락(許諾)되지 않고 궤장( 杖)을 하사(下賜) 받은 후 문하시중(門下侍中) 상주국(上柱國)으로 강화백(江華伯)에 봉해져서 후손들이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은 강화(江華)땅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 그후 시조의 후손 근영(瑾英)이 고려 인종(仁宗) 때 소감(少監)을 역임했으며, 원(元)은 몽고(蒙古)의 내침으로 강화에 천도하는 왕(王)을 호종하여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러 가세(家勢)를 일으켰다.
조선조에 와서는 의령 현감(宜寧縣監)의 인동 현감(仁同縣監)을 거쳐 인천 부사(仁川府事)를 역임한 조(組)가 간신(奸臣)들의 모략으로 평안도 영유(平安道永柔)에 유배(流配)되었다가 그 곳에 정착(定着)하여 살면서 후손들이 번성하자 그를 낙향시조(落鄕始祖)로 삼고 기일세(起一世)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