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경 한나라 말기에 중국의 유순유가
사신으로 우리나라에와서 산천이 수려함을 보고 우리나라에 정착하여 살면서 우리나라의
유씨가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그후의 후대는 고증 할 수가 없다.
시조 유금필(庾黔弼, 시호는 충절)은 황해도 평주(평산) 사람으로 고려 태조 왕건 휘하의 명장으로서 그는 고려 개국 초기에 정서 대장군,
정남대장군, 도통대장군 등을 역임하면서 후백제의 견훤을 치고 후삼국의 통일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 통합삼한익찬공신으로 태사에 추증되었으므로
후손 들이 그를 시조로 하였다.
후에 무송으로 합본 하였다.
유씨 (庾氏)는 본래 중국에서 계출된
성씨(姓氏)로 한(漢)나라 말기와 진(晉)나라 초기에 유순유(庾荀悠)가 우리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건너와 정착하여 살면서 부터 유씨(庾氏)의 시원(始原)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 후 후손(後孫) 유금필이 정서 대장군(征西大 將軍)
· 도통 대장군 (都統大將軍)을 역임하면서 고려 개국(高麗開國)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 통합삼 한익찬공신(三重大匡統合三韓翊贊公臣)으로 태사(太師)에 추증(追贈)되고
식읍(食邑)을 하사(下賜) 받았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그를 시조(始祖)로
하고 조상의 세거지(世居地)인 평산(平山)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그후 금필의 5세손 녹숭(祿崇)이 고려 숙종(肅宗) 때 추밀원사(樞密院使)
겸 태자 빈객(太子賓客) · 상서 좌복야 (尙書左僕射)를 거쳐 무송부원군(茂松府院君)에
봉해지고 후손들이 무송(茂松)에 세거(世居)하게 되자 무송(茂松)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茂長面)에 두었던
통일신라 때의 행정구역명으로 본래 백제의 송미지현(松彌知縣)인데, 통일신라의
경덕왕 때 무송현으로 개명하였으며, 1417년(태종 17) 장사현(長沙縣)과
합하여 무장현(茂長縣)이라고 일컫다가 몇 차례의 변천을 거쳐 고창군(高敞郡)에
편입되었다.
대표적 인물로는 금필의 손자 방 (方)이
현종때 병부상서 겸 상장군을거쳐 문하시랑 평장사를 역임하였으며, 이어 문하시중에
올랐다.
또한 예종때 참지정사에 오른 녹숭(祿崇)의 아들 필(弼)이 판이부사를 지냈고 손자 응규(應奎)가 군기감을 거쳐 공부 낭중에 올랐으며 청렴하기로
이름 높아 [여옥군자(如玉君子)]라 불렸다.
응규의 아들 자량(資諒)은 고종때 상서 좌복야를 역임하여 동북면 병마사를 지낸 석(碩), 우승선(右承宣), 경현(敬玄) 등과 함께 가문을
증흥시켰다.
조선에서는 검교한성부윤을 지낸 귀산(龜山)과 태종때 관찰사를 역임한 오산(鰲山), 이조판서를 지낸 득시(得時), 그리고 좌참찬을 역임한 순도(順道)
등이 유명하였다.
이외에도 시인(詩人) 이자 바둑 국수였던 찬홍(纘洪)과 독립운동가로 대한 광복단을 조직하여국권 회복을 도모한 광복투사 창순(昌淳)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