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음준 (陰俊)은 원나라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고려 공민왕비(恭愍王妃)인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따라 들어온 여섯 시랑(侍郞)
중 한사람으로 죽산군(竹山君)에 봉해졌다.
[조선씨족통보]에 음씨(陰氏)의 본관은
죽산, 괴산, 경주, 여주, 충주,음성 등을 비롯하여 24본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가 죽산음씨의 세거지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죽산음씨(竹山陰氏)의 시조 음준(陰俊)은 원나라 예부시랑으로 공민왕비인 노국공주를 배종하고 고려에 들어와 죽산군에 봉해졌으므로 이때부터 우리나라
음씨의 연원을 이루었으며, 후손들이 죽산에 세거하면서 관향을 죽산으로 삼게 되었다고 [조선씨족통보]에 기록되어 있다.
죽산은 경기도 용인군과 안성군 일부에
속해있던 옛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개차산군인데
신라 경덕왕이 개산군으로 고치고,고려초에 죽주(竹州)로 고쳤다가 995년에 음평 또는 연창이라 하였으며, 1413년에 죽산으로 개칭되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 시조인 준(俊)의
아들 철(澈)이 조선의 개국원종공신으로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절(文節)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철의 아들로 소경을 지낸 곤(崑)과 판사를 역임한 윤(崙)의
대에서 가문이 크게 번창하였다.
그외 군자감정을 지낸 기남(起南)과 병조판서에 추증된 희철(希哲)이 유명했으며, 부호군 도광(道光)은 공조참의 성석(聖惜), 참봉 인수(仁洙),
인성(仁星)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고흥파 (高興派)
괴산파(槐山派)
대구파(大邱派)
죽산파(竹山派)
파주파(坡州派)
1930년도 국세조사에는
전국에 381가구가 있었으며, 1960년도 조사에서 인구 2,481명으로
성별순위가 258성 중 제121위였고, 1985년 조사에서는 인구 4,522명으로
274성 중 역시 제123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