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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
| 음 :
0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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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 : 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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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202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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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435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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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7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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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래 - 세상 끝난 뒤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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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리 > 성씨의 유래 |
| 「행주은(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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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홍열 (殷洪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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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헌에 의하면 은홍열은 신라왕조에서 벼슬이
태자태사 (太子太師) · 보문각대제학에 이르렀고 덕양(德陽 : 행주의 옛
지명)에 정착세거 하였으며, 후손들이 홍열을 시조로하고 행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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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행주 (幸州) 단본. 시조는 신라
태자태사(太子太師) · 보문각대제학 홍렬(洪悅)이다.
신라의 주청(奏請)으로 8학사의 한 사람으로 건너와서 행주에 사적(賜籍)된 당나라의 귀화족으로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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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주 (幸州)는 경기도 고양의
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계백현을 신라에서 우왕 또는
왕봉이라 하였고, 고려 초에 행주로 개칭하여 성종때는 고봉,덕양 등으로 불리우다가
1413년고양군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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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대표적인 인물을 보면 정 (鼎)이
고려 문종때 시중을 역임하고 학문이 뛰어나
사숙(私塾)을 열어 많은 후진을 길러냈으며, 조선조에서 예조참의를 역임한 장손(長孫)의
아들인 여림(汝霖)은 이조판서에 올라 가문을 더욱 유명하게 하였다.
통헌대부에 오른 현(顯)과 해주 판관을 지낸 보(輔) 형제가 가문을 증흥시켰고,
그외 학자로 이름난 정화(鼎和)는 최서림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일면 상계선생(相溪先生)으로 불리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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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행주은씨(幸州殷氏)는 남한에 총 2,975 가구,
12,130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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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군 고부면 일원
경북 경산군 하양읍 청천동
경북 군위군 소보면 위성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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