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는 실전 (失傳)되어
알 수 없으므로 고려 충렬왕 때 봉익대부(奉翊大夫)로 판도판서(版圖判書)를
거쳐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겸 춘추관사(春秋館事)를 지냈다.
장씨 (章氏)는 중국 하간(河間:지금의
직예성 진해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로 문헌에 전해지는 본관은 거창과 복성(福城:보성
지방)이었으나 오늘날에는 거창 단본으로 알려져 있다. 시조 장종행의 아들
두민(斗民)이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홍건적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아림(娥林:거창의
별호) 군(君)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거창으로 하게 되었다.
경상남도 북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신라의 거열군인데 경덕왕이
거창으로 고쳤고 , 1018년(현종 9) 합주(합천)에 속하였다가
조선 태종 때 거제현과 합하여 제창현이 되었다. 후에 다시 거창이
되어 성종 때 군이 되었다가 중종 때 현으로 강등, 1658년(효종
9) 안음에 편입시켰으며 여러 차례 변화를 거쳐 1895년(고종 32)에
거창군이 되었다.
거창 장씨의 시조 장종행 (章宗行)의
선대는 실전되어 알 수 없으므로 고려 충렬왕때 봉익대부로 판도판서를 거쳐
예문관 대제학 겸 춘추관사를 지낸 그를 시조로하고 그의 아들 두민(斗民)이
상장군이 되어 홍건적을 물리치는데 공을세워 아림(거창의 별호)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거창으로 하게 되었다.
그후 두민(斗民)의 아들 영순(永巡)이 고려의 절신 이양중(李養中)의 사위로 공민왕 때 한림학사, 보문각 직제학등을 지냈으며, 후손 참장(參莊)은
공양왕 때 돈령부 부정을 지내고 조선이 개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거창군 웅양면 한현촌으로 퇴거하여 그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외 선조 때 훈련원정으로 임진왜란 때 장렬하게 순절한 헌휘(獻輝)와 판관을 지낸 헌서(獻瑞)가 유명했으며, 석규(錫奎)는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거창장씨는 남한에 총 1,039가구, 4,223명이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