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始祖) 전유겸(錢惟謙)은 원나라
순제 때 용도각 직제학(龍圖閣 直學士)으로 노국공주(魯國公主)를 배행(陪行)하고
고려에 들어와 문장(文章)과 덕행(德行)으로 명성을 날림으로써 왕이 평장사(平章事)를
제수하였고, 최영(崔營)장군의 누이와 혼인(婚姻)을 맺고 개성(開城)의 천장교(天章橋)
옆에 정착하였으므로 우리나라 전씨(錢氏)의 뿌리가 내리게 되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 (朝鮮)이 개국(開國)되자
시조 전유겸은 벼슬을 버리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로 관산(冠山
: 지금의 경북 문경 조령 남쪽)에 들어가 은거(隱居)하였다. 그 후 자손(子孫)들이
그 곳에서 세거(世居)하면서 문경을 본관(本貫)으로하여 세계를 이었다.
문경 (聞慶)은 경상북도 북서쪽 끝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시대 이전에는 고사갈이라 하였으며 신라 초기에 관문현이라
하다가 경덕왕때 관산현이라 고쳤다.
고려 초기에 문희라 하고 현종조에 상주(尙州)에 편입시켰다가 후에 문경으로 고쳤으며 조선 태종때 문경현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군이 되었다.
유겸 (惟謙)에게는 아들 3형제가 있었는데,
맏아들 현(玹)은 고려말에 전서를 지내다
이성계가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세우며 최영을 살해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만주로 유배되었으며, 둘째 진(珍)은 학문에 진력하여 문명을 떨쳤으며
고려의 유민임을 자처하여 문달(聞達)을 바라지 않았고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가문의 인물로는 진(珍)의 손자 중재(仲才)가 무예에 뛰어나고 절의가 비범했으며, 부사 이보흠(李甫欽)과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계획하는데
가담하였다가 탄로되어 함께 화를 입었다. 그외 참판을 지낸 문헌(文獻)과 참의를 역임한 초독(初督). 취만(取萬) 그리고 한성부 좌윤 방윤(邦潤)
등이 훌륭한 업적을 남겨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문경전씨(聞慶錢氏)는 남한에 총 656가구, 2,69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 부산시, 대구시 일원
경북 상주군, 문경군 일원
충북 괴산군 일원
전남 나주군, 화순군 일원
문경 문경전씨종친회 02-2279-1227 서울
중 -수표-11-7(청계빌1층)
본관은 문경 (聞慶) · 지례 (知禮)
· 악계 (岳溪) 등 3본이 전한다.
그러나 지례 · 악계는 문경전씨의 분파로 알려져 있으며 , 실제로 문경 이외의 본관은 찾아볼 수 없다.
원래 중국 성씨로서 진(晉)나라 효제(孝帝) 때 단(端), 민제(愍帝) 때 봉(鳳)이라는 사람이 있고, 5대(五代) 때 유(鍮)는 오월왕(吳越王)이
되었다.
한국의 경우, 고려 공민왕 때 유겸(惟謙)이 사신으로 들어와 최영(崔塋)의 매씨(妹氏)와 혼인을 맺고 귀화,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그는 벼슬을 버리고 관산(冠山:경북 문경)에 들어가 은둔, 세거(世居)함으로써 문경으로 관적(貫籍)하게
된 것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