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공명의 아버지 제갈규가
시조이며 그의 5대손 제갈충 이 13세때 신라 미추왕때 귀화하여 지리산 아래에서
살았다(제갈규의 20세손 제갈공순이 신라 덕흥왕때 귀화하여 살았다는 설도
있다). 그후 고려 고종(일설은 현종)이 33세손인 제갈홍(諸葛泓), 제갈형(諸葛瀅)
두형제를 불러 형은 제씨(칠원)로 남양군에 봉하고, 아우는 갈씨(남양)로
량아군에 봉하여 성을 나누어 사용하였다. 그후 고려 충선왕때 제홍(제갈홍)의
8세손인 제문유가 벽상공신 1등평장사로 옥대를 하사받고 구산(칠원) 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제문유를 중시조로 하고 본관을 칠원으로 하게되었다. 구한말에
일부는 남양 제갈씨로 환원하였다고도 한다.
중시조 문유의 묘소는 경남 함안군 칠원면 우두산에 있다.
본관은 칠원 (漆原) · 의성 (義城)의
2본이 있으나 칠원제씨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제씨는 본래 복성(複姓)인 제갈(諸葛)씨에서 갈린 성으로 전한다.
《남양제갈씨세보(南陽諸葛氏世譜)》에 의하면 제갈씨의 시조는 유명한 제갈 량(諸葛亮:孔明)의 아버지인 제갈 규(諸葛珪)인데, 그의 20대손
제갈 공순(諸葛公巡)이 신라 흥덕왕(재위 826 ∼ 836) 때에 귀화한 것이 한국 제갈씨의 시초이다.
[칠원제씨세보]에 의하면 칠원제씨(漆原諸氏)의 원조는 제갈영(諸葛孀)으로 34세손 제갈 홍(諸葛泓)과 제갈 영 형제 대에서 복성을 각각 한
자씩 나누어 쓰기로 하여 형인 홍(泓)은 제씨(諸氏)로 낭야군에 봉해졌으며, 아우인 영은 갈씨
(葛氏)로 남양군에 봉해져 제씨(諸氏)와 갈씨(葛氏)로 분종되었다.
칠원 (漆原)은 경상남도 함안군에 위치했던
지명으로, 본래 신라 칠토현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칠제로 했고, 고려 초에
칠원으로 하였다
낭야군 홍 (泓)의 9세손 제문유(諸文儒)가
고려 충선왕이 토번으로 유배될 때 호종한 공으로 벽상일등공신에 책록되어 평장사에
올랐고 구산부원군에 봉해 졌으므로 본관을 칠원으로 하여 세계(世溪)를 이어
오면서 가문의 번성을 누렸다.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는, 말(沫)이 조선 선조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워 성주목사에 임명되었으며 정조때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낙(洛)은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배둔역에서 대파한 공으로 참봉을 지냈고 한성부 서윤에 추증되어 이름을 날렸다.
그외 선략장군에 오른 여원(汝元)은 인조때의 학자 경창(慶昌), 호조참의 달룡(達龍), 감찰 정로(廷魯), 방어사 경욱(景彧) 등과 함께
훌륭한 가문을 더욱 빛냈다.
1930년도 국세조사에서는 총 1,229가구가
있었으며 75년도 조사에서는 가구수 2,927가구로 성별순위 249성 중
제88위, 85년도 조사에서는 인구 1만 7392명으로 성별순위 274성
중 역시 제88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