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조석 (鐘錫)은 조선 현종~숙종
때의 인물이며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었다고 한다.
전라북도 (全羅北道) 서해안(西海岸)에
위치한 지명으로 멀리 삼한시대(三韓時代)와 백제 때에는 월내군(月奈郡)으로
불리웠고, 통일신라 때 와서 영암군(靈岩郡)이 되었으나 서기 995년(고려
성종 14)에 낭주군(郎州郡)이라 개칭되기도 하였으며, 1096년(고종 33)
다시 영암으로 복칭(復稱)되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종씨(鍾氏)는 남한에 총 157가구, 62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5년 인구조사에서는 영암 431명, 하음 100명, 강화 17명, 통진1명이 있었다.
종씨는 원래 중국 영천에서 계출된 성씨로서
송나라 환공이 아들은 종에 봉하여 이루어진 성으로 전하는데 ,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확실지 않다.
성씨. 본관은 하음(河陰:江華) 외에 풍덕(豊德) · 통진 (通津)천안(天安) · 영암 (靈岩) · 두원 (荳原:高興) · 정의 (旌義)
등이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기록되어 있으나, 거의가 하음종씨이다.
종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서 송(宋)나라 환공(桓公)이 아들을 종(鍾)에 봉하여 비롯된 성으로 전해지는데, 한국에 들어온 경위는 상고할 길이
없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전국에 47가구가 있었는데, 그 중 32가구가 강화도(江華島)에 거주하였다.
1975년도 국세조사 때에는 가구수 119가구로 249성 중 제163위였고, 1985년의 조사에서는 157가구에 인구 621명으로 274성
중 제173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