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씨 [宗氏]는 중국 경조(京兆)에서
계출된 성씨이며, 주나라 대부 종백의 후예로 전한다.
신라 문무왕 때 아찬으로서 대야성의 도독이었던 종정(宗貞)과 918년(고려 태조 원년)에 대장군(大將軍)으로 후백제군을 크게 격파했던 종희(宗
熙) 등의 이름이 [고려사]에서 보이나, 오늘날의 종씨와의 관련에 대해서는 상고하기 어렵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종씨(宗氏)는 남한에 총 26가구, 13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씨는 중국 (中國) 주(周)나라 대부
종백(宗伯)의 후예로 전한다.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때 아찬(阿찬)으로서 대야성(大耶城 : 현 합천)의 도독(都督)이었던 종정(貞), 고려(高麗) 태조(太祖)때 대장군(大將軍)으로
후백제군(後百濟軍)을 크게 격파했던 종희(熙)등의 이름이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고려사(高麗史)"에서
보이나, 오늘날의 종씨와의 관련에 대해서는 상고(詳考)하기 어렵다.
성씨. 본관은 임진(臨津:長湍지방) · 통진 (通津) 외에 모압(毛押:槐山지방) · 이파 (泥波:萬頃지방) · 인의 (仁義:泰仁지방) ·
황원 (黃原:海南지방) 등이 문헌에 보인다.
종씨는 중국 주(周)나라 대부(大夫) 종백(宗伯)의 후예로 전한다.
한편, 신라 문무왕 때 아찬(阿飡)으로서 대야성(大耶城:川)의 도독(都督)이던 정(貞), 고려 태조 때 대장군으로 후백제군을 크게 격파한
희(熙), 또 비슷한 시기에 소판(蘇判)으로 있던 간(侃) 등의 이름이 《삼국사기》 《고려사》 등에 보이는데, 오늘날의 종씨와의 연관을 상고하기는
어렵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에는 겨우 3가구가 황해도 서흥(瑞興) · 곡산 (谷山) 지방에 있었다.
당시 황해도 구포면 신당리에 살고 있던 경철(慶喆)에 따르면, 그가 3세 때 평남 중화군에서 그곳으로 이주하여 왔다고 한다.
1975년도 국세조사에서는 인구순위에 있어 249성 중 제179위였고, 1985년도 조사에서는 26가구 133명으로 274성 중 제223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