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천암은 명나라초에 조신을 지냈고
그 후손이 영양에서 살았다고 하며 원래 중국 성씨이다 .
중시조 천만리(시호는 충장)는 명나라 말기에 문과에 장원하고 태청전수위사 겸 총독 오군수를 역임하고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때 영량사겸
총독장으로 아들 천상, 천희 형제와 함께 우리나라에 와서 군량수송을 담당 하였고 평양, 곽산, 동래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후 정유재란때에도 직산, 울산 등지에서 전공을 세우고 우리나라에 귀화 하자 조정에서 가상히 여겨 자헌대부에 봉하고 화산군에 봉했다.
천만리의 묘소는 전북 남원군 금지면 방촌리에 있다.
경남 고성군 동해면 강좌리 호암서원에서 음력 8월 1일에 향사한다.
본관은 성주 (星州) 외에도 청주(淸州)
· 강릉 (江陵) 등이 문헌에 전한다.
성주초씨는 중국계의 귀화 성씨로서 파릉(巴陵:揚子江 유역)초씨라고도 한다.
시조 해창(海昌)은 본래 명(明)나라 한림학사로서, 조선 인조 때 명나라가 망하고 청(淸)나라가 새로 일어나던 무렵에 망명해 들어와서 충의장군
성산백(忠義將軍星山伯)에 봉해지고, 경북 성주(星州)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후일 그의 아들 수명(壽命)이 청나라가 밀파한 자객을 피하여 명(明)자가 붙은 고을을 찾아 함북 명천(明川)에 은둔, 그 후로부터 후손이
번창하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에 총 58가구 가운데 45가구가 함북 명천(40가구)을 비롯하여 경성(鏡城)
· 길주 (吉州) · 무산 (茂山) 등지에 집중 분포되어 있었다.
초씨는 귀화한 역사가 짧은 탓으로 역사상 뛰어난 인물은 별로 눈에 띄지 않으나, 조선 순조 때 효자정문(孝子旌門)이 세워진 중연(重燕)과
용안(龍安) 현감을 지낸 각(珏)을 비롯하여 징명(徵明:헌종 때의 陰城현감) · 병덕 (秉悳:헌종 때의 대사간) · 우섭 (禹燮:定平군수)
등이 있다.
파릉 (巴陵)은 악양(岳陽)의 옛 지명으로
중국 호남성 북동끝에 있는 악양 지구의 현공서(縣公署) 소재지이다. 동정호의
물이 양자강으로 흘러나가는 출구에 위치하여 양자강의 수운과 경광철도 육운이
겹쳐 있어서 호남성의 관문 구실을 한다.
남북조 시대부터 있어온 옛도시로 악주성 서문에 있는 악양루는 동정호와 양자강을 전망하는 웅대한 경관으로 유명하다.
[조선씨족통보], [증보문헌비고]등의
문헌에 성주, 청주, 강릉이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가 동원분파(同源分派)이며
현존하는 관향은 파릉 단본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른 성씨와는 달리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초씨의 인물로는 조선 순조때 효행으로 명성을 날려 효자 정문(孝子旌門)이 세워진 중연(重燕)과
용안 현감을 지낸 각(珏)이 유명했고, 헌종때 대사간을 역임한 병덕(秉悳)은 정평군수를 지낸 우섭(禹燮)과 함께 파릉초씨 가문을 빛냈다.
이밖에도 효자(孝子)로 칭송을 받았던 원명(原明)과 선(璿)이 유명했으며 통덕랑(通德郞)에 오른 갑이 당대에 뛰어났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파릉초씨(巴陵楚氏)는 남한에 총 47가구, 23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