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편갈송 (片碣頌)은 중국 명나라
신종 때 사람으로 1592년(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군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서 경주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
그의 선조는 절강사람으로 고조 할아버지 편지(片址)는 명나라에서 태자태사를 역임했으며 원래는 당나라 황실의 이(李)씨의 종친이었으나 임금에
대한 충정을 인정받아 일편단심의 편자를 성으로 하사 받았으며 증조 할아버지 편일은 절강백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후손들이 고향인 절강을 본관으로 하였다.
본관은 절강 (浙江) 단본이다.
시조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원하러 온 중국 명(明)나라 총절사 갈송(碣頌)이다.
시조 편갈송의 아들, 풍세(豊世), 풍원(豊源), 산보(山甫) 3형제가 금오산으로 와서 아버지를 봉양하다가 갈송(碣頌)의 상(喪)을 당하자
삼년간 시묘(侍墓)한 후 경주를 떠나 풍세(豊世)와 풍원(豊源)은 나주(羅州)에, 산보(山甫)는 만경(萬頃)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며 편갈송(片碣頌)을
시조(始祖)로 하고 선향(先鄕)인 절강(浙江)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게 되었다. 편씨(片氏)는 중국(中國) 당(唐)나라
종실(宗室)의 후손으로 본래 남송(南宋)때 현유(賢儒)인 이 동(李 )의 8대손 이 지(李 址)가 명조(明祖)때 한림원 태학사(翰林院太學士)로서
일편단심(一片丹心) 충간(忠諫)의 공으로 편씨(片氏)를 사성(賜姓)받았다.
절강 (浙江)은 중국 동남부 동해 연안에
위치하여 양자강 하류의 남부를 점하고 있으며 전당강(錢塘江)에 의하여 동서로
나누어져 항주를 성도(省都)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편씨 (片氏)의 연원은 편지(片址)의
현손인 편갈송(片碣頌)이 임진왜란 때 명군 이여송 휘하의 군무총병유격장으로
들어와 평양에서 전공을 세우고 귀국하였다가, 정유재란때 선조로부터 노고를
치하하는 친서를 받았으며, 당시 본국의 어지러운 소식을 듣고 환국을 단념한
뒤 경주 금오산에 은거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본국의 아들, 풍세(豊世), 풍원(豊源), 산보(山甫) 3형제가 금오산으로 와서 아버지를 봉양하다가 갈송(碣頌)의 상(喪)을
당하자 삼년간 시묘한 후 경주를 떠나 풍세와 풍원은 나주에, 산보는 만경에 정착세거하며 편갈송(片碣頌)을 시조로 하고 선향(先鄕)인 절강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게 되었다.
편씨의 가계는 나주에 뿌리를 내린 풍세가 슬하에 아들 성대(成大)와 문수(文秀)를 두었으며, 풍원은 응복(應福), 한정(漢鼎), 영표(永標)
3형제를, 만경에 정착한 산보(山甫)는 외아들 순당을 두어 이들의 자손대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역사상 뛰어난 인물로는 고종때 무과에 급제하여 전주 중군을 지낸 기진(沂珍)과 정평부사 좌언(佐彦)이 있으며 독립운동가로 명성을 날린 강렬(康烈),
덕렬(德烈)이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절강편씨(浙江片氏)는 남한에 총 2,607가구, 10,90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