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씨 (平氏)는 중국 여남(汝南)에서
계출(系出)된 성씨(成氏)로서, 한(漢)나라 성제(成帝)때 평릉인(平陵人)
평 당(平 當)이 도위(都尉)를 지냈고, 식읍(食邑)의 지명을 성(姓)으로
삼은 것이 시초(始初)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평씨(平氏)의 연원(淵源)은
문헌(文獻)이 전(傳)하지 않아 정확히 상고(詳考)할 수 없으나, 931년(고려
태조14) 평 환(平 喚) 이라는 사람이 강덕진두(康德鎭頭)가 되었다는 기록이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나타나 있다. 평씨(平氏)의 본관(本貫)은 충주(忠州),
인주(仁州), 예산(禮山), 가흥(嘉興), 평원(平原)등 6본(本)이 있으나,
모두가 동원분파(同源分派)인 것으로 추정된다.
충청북도 (忠淸北道) 중원군(中原郡)의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에는 국원성(國原城) 또는 미을성(未乙省)
· 완장성 · 탁장성 (託長城) 등으로 불리우다가 신라에 병합되어 진흥왕때
이곳에다 소경(小京)을 두었고 경덕왕(景德王)이 중원경(中原京)으로 고쳤으며,
고려조에 이르러 태조(太祖)가 충주(忠州)로 개칭하였다. 그후 고종(高宗)
때 국원경(國原京)으로 고쳐 불렀고, 1550년(명종 5) 유신현(維新縣)으로
부르다가 조선 선조(宣祖) 즉위년에 다시 충주(忠州)로 환원되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충주평씨(忠州平氏)는 남한에 총 116가구 45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강화군 . 시흥군 일원
황해도 연백군. 서흥군 일원
평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 한나라 성제
때 평당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식읍인 평릉을 성으로 삼아 평씨가 생겼다고
한다 .
평씨가 언제 우리나라에 왔는지 알 수없지만 '조선씨족통보'에는 충주, 선평, 인천, 예산, 가흥, 평원(원주) 등 6본이 나타나 있다.
931년(고려 태조 14년) '강덕진두'가된 평환이라는 사람이 있었으나 현재 평씨와의 관계는 알 수가 없다.
성씨. 본관은 충주(忠州) 외에도 부평(富平) · 인천 (仁川) · 예산 (禮山) · 가흥 (嘉興) · 평원 (平原) 등이 문헌에 나타나
있으나 모두 동원분파(同源分派)인 것으로 보인다.
《충주평씨세보》에 의하면 시조는 조선 인조~선조 때 사람인 우성(友聖)이다.
1930년도 국세조사 때 전국에 모두 52가구가 있었는데 그 중 34가구가 시흥 · 강화를 중심한 경기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
1960년도 국세조사에서는 인구 367명으로 성별순위는 258성 중 제158위였고, 1975년도 조사에서는 가구수 117가구로 249성 중
제166위였다.
1985년 실시한 인구조사에서 178가구, 648명으로 총 274개 성 가운데 171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