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하흠 (夏欽)은 본래 송나라에서
대도독(大都督)을 역임했으며 고려 인종 때에 한국에 귀화하여 지금의 경북
달성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
그의 아들 하용이 공을 세워 달성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본관을 달성으로 하였다고 한다.
중국 (中國) 송(宋)나라의 귀화족(歸化族)으로
전하는데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송(宋)나라에서 대도독(大都督)이었던
하 흠(夏 欽)이란 사람이 고려(高麗) 인종(仁宗) 때 귀화(歸化)하여 달성(達成
: 대구의 옛 지명)에 정착(定着)한 것이 우리나라 하씨(夏氏)의 시원(始原)이라고
한다. 그 후 흠(欽)의 아들 용(溶)이 고려 때 나라에 공(功)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시조(始祖)를 흠(欽)으로 하고 본관(本貫)을
달성(達城)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달성 (達成)은 대구의 옛 지명으로,
대구는 영남지방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경상도의 행정 중심지이다. 본래 신라때
달구화현(달불성)이었는데, 신라 경덕왕이 대구(大丘)로 고쳐서 수창군의 영현으로
삼았고, 조선 세종때 대구현(大丘縣)에서 대구군(大丘郡)으로 승격되면서 수성을
속현으로 두었다. 1750년 대구의 유생 이양채가 구(丘)자는 대성공자(大聖孔子)의
휘(諱)자이므로 이를 개칭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으나 왕의 윤허를 얻지 못했다가
정조때부터 점차 대구(大邱)로 쓰이기 시작했다.
주요 인물로는 흠의 현손 광신 (光臣)이
고려때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역임하였으며, 혁하(赫河)가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조선조에 와서는 인경(仁敬)이 첨지중추부사를, 시우(時雨)가 부호군을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그외 정조때의 학자 시찬(試鑽)은 학행으로
유명했으며,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여 '열암집(悅庵集)'을 저술했다.
오늘날에 와서 하씨(夏氏)는 달성을 단본으로 하여 경북 달성,경산 지방과 경남 밀양, 강원도 원주지방, 전북 순창, 장수 지방 등지에서 많이
살고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달성하씨(達城夏氏)는 남한에 총 713가구, 2,82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직할시 일원
- 하광신(光臣) : 고려 명종 때 효자로
정문이 세워졌다.
- 하우신(佑臣) : 부사를 지냈다.
- 하시찬(時贊) : 조선 정조 때의 학자였다.
- 하인경(仁敬) : 조선 선조 때 중추부동지사를 지냈다.
- 하운서(雲瑞) : 판관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