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하공진 (河拱辰)은 고려 현종 때
상서공부시랑을 지내고 평장사에 추증되었다. 그는 진주 출생으로, 1010년(현종
1년) 강화 교섭사로 적진에 들어 갔다가 거란군에게 잡혀갔다가 요(遼)나라
왕 성종(聖宗)의 회유를 받았으나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죽었다.
진주 하씨는 그 계통이 뚜렷하지 않은 대략 3파로 분파된다.
본관은 70여 본이 문헌에 전하나, 대부분
하씨의 세거지(世居地)이며, 그 중에서 확실한 것은 진주(晉州) · 안음
(安陰) · 강화 (江華)의 3본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종(大宗)은 ‘ 진주 ' 이며 , 나머지는 그 분파로서 오늘날에는 진주하씨로 일원화되어 있다.
시조는 고려 현종 때 상서공부시랑을 지낸 하공진(河拱辰)이다. 그는 진주 출생으로, 거란군에게 잡혀갔다가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요(遼)나라
왕 성종(聖宗)의 국문을 받고 항사(抗死)했다.
진주 (晋州)는 경상남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거열성인데 신라 문무왕때 신라의 영토가 되어 거열주라
하였고, 757년 강주로 고쳤다가 뒤에 청주로 개칭되었다. 고려초에 다시
강주로 환원하였고, 995년에 진주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뒤 조선조에 와서는
진양도호부가 되기도 하였으나 그후 여러 변천을 거쳐 1949년에 진주시가
되었다.
순흥부사 윤린 (允麟)의 아들 윤(崙)이
뛰어났다.
그는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하고 감찰규정이 되어 신돈의 비행을 공박하기도 했으며, 조선이 개국된 후 경기도 관찰사로 계룡산 천도를 반대하여
한양 도읍(都邑)을 주장했다.
정종때 제 2차 왕자의 난에 공을세워 진산백으로 진봉되어 좌명일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태조실록' 편찬을 지휘하는 한편 시문에 능하여 이첨과
함께 '동국사략'을 편찬한 후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한편 부윤 자종(自宗)의 아들 연(演)은 일찍이 정몽주 문하에서 학문을 익히고 수찬, 집의, 예조참판 등을 거쳐 세종때 대사헌에 이르러 불교
개혁을 추진했으며, 형조 판서, 좌찬성, 우의정을 역임한 후 영의정에 이르렀다
조선조에 충절로써 하씨 가문을 빛냈으며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으로 가문에서 자랑하는 하위지(河違地)는 첨(詹)의 아들인데,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가독서(賜暇讀書)로 학문을 연마한 후 집현전교리가 되어 '오례의주(五禮儀註)', '역대병요(歷代兵要)'
편찬에 참여했다.
단종때 부제학에 이어 예조판서를 지낸 그는 성격이 침착 과묵했고, 집현전에 있는 동안 왕의 측근에서 시정(施政)을 보필했으며,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후 받은 녹(祿)은 하나도 먹지 않고 창고에 보관한 절신이었다.
1456년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거사에 실패하자, 형 강지(綱地), 아우 기지(紀地), 소지(紹地)와 함께 죽음을
당했다.
그외 예조좌랑을 지낸 윤(潤)은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 '운수당실기(雲水當實記)를 저술했고, 참봉 영수(永水)의 아들 응림(應臨)은 명종때
예조정랑을 지냈는데, 문장이 뛰어나 송익필 등과 함께 당대에 '8문장(八文章)'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시인 만리(萬里)는 극윤(克潤)의 아들로 일찍이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심하였으며, 부모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받아
대접한 효자로 이름을 날렸다
① 시랑공파(侍郞公派)의 세계는 공진
· 측충 (則忠) · 탁회 (卓回) · 정재 (挺才) · 남수 (南秀) ·
소 (邵) · 부심 (富深) · 식 (湜)으로 되어 있으며,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윤(崙)이 그 후손이다.
② 사직공파(司直公派)는 진(珍) · 영상 (永尙) · 맹공 (孟恭) · 원경 (元慶) · 백부 (白富) · 의 (義) · 보 (保) ·
직의 (直 )로 되어 있으며,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연(演)은 윤(崙)과 서로 교분이 두터웠던, 같은 시대의 정승이었으나 서로 계보를 상고(詳考)할
길이 없었던 것 같다.
③ 단계공파(丹溪公派)는 성(成) · 희보 (希甫) · 공정 (公正) · 현 (玄) · 윤 (胤) · 지백 (之伯) · 담 (澹)으로 되어
있으며,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인 위지(緯地:丹溪)의 집안이다. 흔히 단계하씨로 알려져 있으나, 역시 진주하씨이다. 담은 위지의 부친이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진주하씨(晋州河氏)는 남한에 총 33,233가구, 178,83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일원
전북 완주군, 임실군 무주군 일원
경남 진주 일원
전남 화순군, 광양군 일원
충북 청원군 일원
경남 창녕군, 의령군, 합천군 일원
충남 당진군, 금산군, 논산군 일원
경남 남해군, 하동군 일원
진양 진양하씨대종문회 02-865-9690 서울
-금천-독산4-1012-15(2층)
진양 진양하씨재부종친회 051-818-1701 부산 -부산진-부전1-261...
晉陽 晉陽河씨大宗會 0591-745-6447 晉州市南城洞 247-1
忠義堂
진주(河)s 충북 제천 .단양.영월 진주 하씨 종친회 011-465-7731 충북
제천시 청전동 584-4 27/3반 0114657731@hanmail.net
晉陽 晉陽河씨大宗會 0591-745-6447 晉州市南城洞 2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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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河) 晉陽河씨大宗會 051-745-6447 晉州市南城洞 247-1
· 하윤린 : 고려 충숙왕
때 순흥부사, 예의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 하윤원 (允源) :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에게 함락된 개경 수복에 공을 세우고 우왕 때 대사헌이 되었다.
· 하을지 (乙沚) : 고려 때 전라도원수가 되어 왜선의 나포에 공을 세웠다.
· 하경복 (敬復) : 조선시대에 함경도 병마도절제사로서 15년 동안 북방수비에 큰 공을 세웠다.
· 하윤 (潤) : 조선 성종 때 예문관검열을 지내고 임사홍(任士洪)의 서용(敍用)을 반대했다.
· 하응림 (應臨) : 조선 명종 때의 학자 진보(晉寶), 명종 때 당대의 '8문장' 으로 문명을 날렸다.
· 하규일 (圭一) : 구한말의 국악사(國樂士)로 중년 이후에 관계(官界)에 진출하였는데, 그는 무용에도 유능했으며 가곡의 정통을 지킨 사람이다.
· 하난사 (蘭史) : 여류 선각자로 미국 유학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 이화학당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1919년에는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