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는 호의 (扈義), 혹은 호원보(扈元甫)라고도
했다. 고려 태조 1년 건국에 공을세워 개국공신(開國功臣)에 책록되었고,
서기 927년(고려 태조 10년) 평장사(平章事)로서 공산(公山)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후백제 견훤군(甄萱軍)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처한 태조 왕건을
신숭겸(申崇謙)과 함께 역전고투(力戰苦鬪) 끝에 구출하고 전사(戰死)하여
태사(太師)로 추증되고 희개(禧開)라 시호(諡號)를 받았다. 배현경,신숭겸,
복지겸, 홍유, 유금필와 함께 6태사로 불리운다.
신평호씨: 호의의 맏아들 호철(扈哲)이 배천군(白川君)에 봉해져 배천을 본관으로 삼았었다. 그뒤 17세손 호종국(扈從國)이 고려 공민왕 때
숭록대부정당문학(崇祿大夫政堂文學) 수문전태학사(修文殿太學士) 상장군(上將軍)에 이어 대사도(大司徒)로 승진하고 개국공신에 책록, 신평군(新平君)에
봉해지고 식읍을 하사 받고 본관을 신평으로 하였다.
보안호씨(保安扈氏) : 호철의 둘째 동생 호은열(扈殷說)이 광익효절정난안사공신(匡翼效節定難安社功臣)으로 보안군(保安君)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보안(保安)으로 하게 되었다.
나주호씨(羅州扈氏) : 호철의 셋째 동생 호흥인(扈興仁)이 나주군(羅州君)에 봉해짐으로써 본관을 나주로 하게 되었다.
시조 호의의 묘소는 황해도 배천군 태백산성에 있다.
1) 보안 호씨(保安扈氏) : 의(義)의
맏아들 호은열(扈殷說)이 광익효절정난안사공신(匡翼效節定難安社功臣)으로 보안군(保安君)에
봉해졌으므로 보안(保安)으로 관적(貫籍)하게 되었다.
2) 전주 호씨(全州扈氏) : 조선 선조(宣祖)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明)나라 장군(將軍) 이여송(李如松)의 부장(副將)으로 참전하여
전공(戰功)을 세우고 난(亂) 후에 조선에 귀화(歸化)한 호준(扈浚)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신평은 당진군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
당진군은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에 속하였고, 삼국시대 백제 때에는 벌수지현(伐首只縣
혹은 夫只郡)과 혜군(刈郡) · 사평현 (沙平縣) · 여촌현 (餘村縣)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757년 경덕왕(景德王) 때 혜군에은
혜성군으로 개칭되었다. 또 벌수지현은 당진현(唐津縣)으로, 사평현을 신평현으로,
여촌현을 여읍현으로 각각 개칭된 뒤 혜성군( 城郡:면천)에 편입되었다.
고려시대 때는 혜성군과 당진현이 1018년(고려 현종 9)에 운주(運州)에 속했다가 1106년(고려 예종 1)에는 감무(監務)를 두었다.
신평현은 현종 9년에 홍주로 편입되었고, 여읍현은 고려초에 여미현으로 바꾸어 운주에 속하였다. 1298년(고려 충렬왕 24)에는 덕풍현에
딸린 합덕부곡이 합덕현으로 승격되었다. 고려 말기 1358년(고려 공민왕 7)에는 홍주목에 속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고려 시대의 제도를 그대로 따르다가 1413년(태종 13) 지방관제를 개혁하면서 당진을 현으로 하고 현감을 두었다. 이때
면천(沔川)지역은 면천군으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송익필(宋翼弼)과 이지함(李之 )이 면천에서 주자학을 연구하였고, 〈구운몽〉
〈사씨남정기〉를 남긴 김만중(金萬重), 한국인 최초의 신부 김대건(金大建)은 면천에서 태어났다.
조선시대 말엽 1895년(고종 32)에 당진군으로 승격되어 군내, 동면, 남면, 상대, 하대, 고산, 외맹, 내맹의 8개면을 관할하였다.
합덕현은 세조 때 홍주군의 합남면 · 합북면이 되었다 . 신평현은 조선 초기에 없어지고 현내면 · 신남면 · 신북면이 되었다 . 1914년
군 · 면 폐합으로 당진군과 면천군이 당진군으로 통합되고 , 면천군 22개면을 7개면 98개리로, 당진군 8개면을 3개면 25개리로 정비하여
10개면 123리로 행정구역을 변경하였다.
1957년 서산군 대호지면과 정미면 18개리 전체를 편입 하여, 12개면 150개리가 되었다, 1963년 당진면이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73년
정미면(貞美面) 여미리(餘美里)가 서산군 운산면(雲山面)으로 이관되고, 합덕면이 합덕읍으로 승격되었다. 2000년 현재 당진읍 · 합덕읍
· 고대면 · 석문면 · 대호지면 · 면천면 · 순성면 (順城面) · 우강면 · 신평면 · 송악면 · 송산면 · 정미면의 2읍 10면 250개리이다.
호씨의 본관은 조선씨족통보와 증보문헌비고
등에 보안 , 배천, 나주, 전주, 양근 등을 비롯하여34본까지 기록하고
있으나, 전주를 제외한 나머지 본관은 모두가 동원분파로 알려졌다.
호씨(扈氏)는 고려 창업의 원종공신인 호의(扈義)를 도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서기 927년 평장사로서 공산(公山)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후백제 견훤군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처한 왕(왕건)을 신숭겸과 함께 역전고투
끝에 구출하고 전사하여 태사로 추증되었다.
보안호씨(保安扈氏)는 의(義)의 맏아들 호은열(扈殷說)이 광익효절정난안사공신으로 보안군에 봉해졌으므로 보안으로 관적하게 되었으며, 둘째아들
흥인[興仁]이 나주군에 봉해져서 나주로 관적하게 되었다.
신평 호 (扈) 씨는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597 가구에 1,854 명으로 성씨내의 순위는 1 위이며 전체 본관별 인구
순위는 917 위이며, 호(扈) 씨는 1,322 가구에 4,228 명으로
전체 성씨 순위는 134 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황해도 장연군 . 송화군. 봉산군. 평산군
일원
함남 북청군 북청읍 일원
본관은 보안 (保安) · 나주 (羅州)
· 배천 (白川) · 전주 (全州) 외에도 양근(楊根) · 신평 (新平)
· 충주 (忠州) 등 20여 본이 문헌에 기록되었으나, 전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동원분파(同源分派)인 것으로 전한다.
《호씨대동합보(扈氏大同合譜)》에 따르면, 호씨의 도시조는 고려 창업의 원종공신 호의(扈義)이다. 그의 아들 은열(殷悅)이 보안군(保安君)에,
아우 흥인(興仁)이 나주군(羅州君)에 봉해짐으로써 보안 · 나주로 분적하였다 .
조선시대에는 주(周)가 문종 때 세자부빈객, 성휘(聖輝)가 영조 때 중추부동지사를 역임하였다.
한편, 전주호씨의 시조 준(俊)은 임진왜란 때 이여송(李如松) 휘하의 부장(副將)으로 참전, 많은 공을 세운 뒤에 귀화하였다 하며, 그의
후손 중권(仲權)이 고종 때 대호군(大護軍)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