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비밀번호
회원가입  |  아이디, 비밀번호 찾기
2026년
음 : 09-17
양 : 10-27
서기:2026년
단기:4359년
불기:2570년
위아래 - 세상 끝난 뒤에도 -
 
 home > 뿌리 > 성씨의 유래 
「나주화(化)
화명신
진양 화씨 (化氏)

중국 낭야 사람이며, 문헌에 의하면 명신은 본성이 화씨로서, 조상 대대로 명나라에서 벼슬하던 교목세가의 후손으로 낭야의 화촌대에 살다가 오랑캐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자 개탄하며 바다를 건너 조선에 들어와 경주에 정착하였다. 조선 성종이 이 소식을 듣고 가상히 여겨 "화씨(花氏)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향화의 의리다"하며 명신을 예우하고 화씨의 성을 하사하고, 경성군에 봉했다.
상계의 실전으로 계대를 밝히지 못하여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우고 진주에 세거한 후손 섭 (燮)을 일세조로 하고, 본관을 진양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본관이 복용, 여황 2본이 있으나 모두 나주의 지방명으로 실제로는 나주 단본이다.
진주의 고호로 경상남도의 남서쪽에 위치하는 지명이며 , 본래 백제의 거열성이었는데 문무왕 때 신라 영토가 되어 거열주라고 하였으며, 757년(경덕왕 16) 9주 5소경제의 실시와 함께 강주로 고쳤다. 그 뒤 혜공왕 때에 정주로 개칭되었다가 고려 초기에는 다시 강주로 환원하였다. 995년(성종 14) 전국이 10도로 개편되면서 진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뒤 조선시대에는 한때 진양도호부가 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진주목으로서 서부 경남 일대를 관할하였다. 1895년(고종 32) 진주부 진주군이 되었으며 1910년 진주군 진주면이 되었다가 1931년 면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1939년 진주읍이 진주부가 되고 1949년에 부(府) 시(市)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가선대부에 오른 섭 (燮)의 아들 봉상(奉祥)과 영조때 무관으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세워 공신록에 올랐으며 가선대부로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일취가 유명했다.
그외 절충장군 동휘와 정릉참봉 덕봉(德鳳), 통덕랑 윤택(允澤)은 오우장을 지낸 정한, · 응한 , 참판 석한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진양 화씨는 남한에 총 400가구, 1,59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직할시 일원
경남 진주시. 진해시 일원

경남 진양군 일원
경남 함양군 일원
 
 
 
 
위원회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제휴문의 | 광고문의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민주로 32번길 29 (쌍촌동)     상호명 : 광산탁씨전자족보운영회
단체고유번호: 410-80-40462  대표: 탁인석    전화번호 062-374-0045
© HUMEN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