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는
원래 중국의 6 조 ( 六朝 ) 시대에 시작되었는데 이는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이었으며
, 개인의 족보를 갖게 된 것은 한 ( 漢 ) 나라 때 관직등용을 위한 현량과 ( 賢良科
) 제도를 만들어 과거 응시생의 내력과 조상의 업적 등을 기록한 것이 시초이다 .
우리나라의 족보는 고려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 고려 의종 (18 대 , 1146~1170)
때 김관의 ( 金寬毅 ) 가 지은 『왕대종록 ( 王代宗錄 ) 』이 처음이다 . 그러나『고려사』를
보면 고려 때에도 양반 귀족은 그 씨족계보를 기록하는 것을 중요시하였고 , 제도적으로
종부시 ( 宗簿寺 ) 에서 족속의 보첩을 관장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귀족 사이에는
계보를 기록 보존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집안에서 사적으로 간행되기 시작하였으나 , 1476 년 (
조선 성종 7 년 ) 의 『 안 동권 씨 성화보 ( 安東權 氏 成化譜 ) 』가 체계적인
족보 형태를 갖춘 최초의 족보이다 .
이후 1565 년 ( 조선 명종 20 년 )
에는 『문화유씨 가정보 ( 文化柳氏 嘉靖譜 ) 』가 혈족 전부를 망라하여 간행되면서
, 이를 표본으로 하여 명문세족에서 앞을 다투어 족보를 간행하기 시작하였다 . 그
결과 17 세기 이후 여러 가문으로부터 족보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족보가
이 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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