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씨 (簡氏)는 중국 범양 간백[簡伯]의 후손으로 전하고 있으나, 상계[上系]를 고증할
문헌이 실전되어 우리나라 簡氏의 자세한 연원은 알수없다.
가평간씨 세보에 의하면 시조 간균은 1164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문하시중 평장사에
이르렀으며, 1189년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직하고 풍덕 백준동 으로 낙향하여 시문[詩文]을
벗삼아 평생을 마쳤다고 한다.
묘는 풍덕 백후동(가평)에 있다.
시조 균 [筠]의 손자 주[柱]가 충숙왕때 민부전서를 지내고 가평군에 봉해 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가평[加平]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간씨의 본관은 가평[加平], 남양[南陽], 서산[瑞山], 경주[慶州], 인동[仁同] 등 9본[本]이 있는 것으로 조선씨족통보에 기록되어 있으나
이중 가평이 대종[大宗]이다.
고구려시대에는 근평군 (斤平郡) 혹은 병평군이라고 하였다. 757년(통일신라 경덕왕 16) 가평군(嘉平郡)으로 개칭되었고, 1018년(고려 현종 9) 강원 춘성군에 속하였다.
1396년(조선 태조 5) 조종현을 폐합하고 1413년(태종 13) 개례(改例)에 따라 강원에서 경기로 편입하였으며, 1525년(중종 20) 종래의 현이 군으로 승격되었으나, 1697년(숙종 23)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07년 다시 군으로 승격하였다. 그 후 1888년(고종 25) 춘성부(春城府)에 속하였다가 1894년 경기도에 다시 소속되면서 포천군에 속하게 되었다.
1895년 5월 26일 전국을 23부로 구획하는 지방제도 및 관제개혁 때에도 한성군(漢城郡) 관할 포천군에 그대로 포함되었으나 다음해인 1896년(건양 1년) 8월 4일 관제개혁으로 전국을 13도로 분할하면서 경기관찰사 소관에 포천군으로부터 분리하여 가평군이 되었다.
1963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가평군 관할인 외서면의 입석리 · 내방리 · 외방리가 양주군 수동면에 편입되었고 , 1973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가평면이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양평군 서종면 서문리가 가평군 설악면 이천리로, 서종면 삼회리가 외서면 삼회리로 편입하였다. 현재 가평읍 및 설악면(雪嶽面) · 외서면 (外西面) · 상면 (上面) · 하면 (下面) · 북면 등 1읍 5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평 간 (簡)씨는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639 가구에 2,076명으로 성씨내의 순위는 1위이며 간(簡)씨는 753가구에 2,429 명으로 전체 성씨 순위는 15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