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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휴맵 > 성씨의 유래 
「강령강(康)「곡산강(康)「상원강(康)「신천강(康)「용인강(康)「운남강(康)
강호경 (康虎景)
시조 강후 (康候)는 중국 주나라 무왕의 아우 강숙봉의 둘째 아들로서 기원전 198년에 평양에 들어와 왕실을 교화한 공으로 기자(고조선시대 기자조선의 시조)로부터 강씨 성을 받았다. 고려 명종때 80세손인 지연이 신천에 살다가 신천 부원군에 봉해 지자 후손이 본관을 신천으로 하였다.

북제주 조천서원에서 제향한다.
본관은 신천 (信川) · 곡산 (谷山) · 재령 (載寧) · 충주 (忠州) · 임실 (任實) · 용인(龍仁) · 강령 (康翎) 등 10본이 전하고 있으나 신천 · 곡산 · 재령 강씨가 대종이며, 오늘날 이들 3본 이외의 강씨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득성조(得姓祖) 숙(叔)은 주(周)나라 왕족으로, 198년 기자(箕子)와 함께 평양에 들어와 기자의 중신(重臣)이 되었다고 하며, 시조 호경(虎景)은 고려 태조 왕건의 외(外) 6대조이고, 그의 4대손 보육(寶育)은 왕건의 외고 조부로서 왕덕대왕(王德大王)으로 추존된 인물이다.
그러나 강씨의 실질적인 시조라고 할 중시조(中始祖:1세)는 충렬공(忠烈公) 지연(之淵)으로 그는 몽골 침입 때 고려 고종(高宗)을 따라간 호종공신(扈從功臣)이며 신성부원군(信城府院君:신성은 신천의 옛 이름)에 봉해짐으로써 이때부터 신천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오늘날 모든 강씨는 지연의 후손으로, 곡산강씨의 중조(中祖) 상산백(象山伯) 서(庶)는 6세이며, 재령강씨의 중조 안릉군(安陵君) 득룡(得龍)은 8세로서 조선 태조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는 그의 친누이동생이다.
득룡은 고려 공민왕 때 삼사우사(三司右使)를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을 결심, 관악산에 들어가 암자에 살면서 매일같이 산에 올라 개성(開城)을 향해 통곡하였는데, 이곳이 연주대(戀主臺)와 연주암으로 전해지고 있다.
태조는 그를 안릉부원군(安陵府院君:안릉은 재령의 옛 이름)에 봉하여 안정공(安靖公)이란 시호를 내렸고, 그의 후손은 재령에 관적(貫籍)하였다.
제주강씨의 이른바 입도시조(入島始祖)인 영(永)은 신덕왕후의 사촌오라버니로, 전라감사를 지내다가 왕자의 난 때 제주도로 피신, 그곳에서 여생을 마쳐 오늘날 제주강씨들은 모두 영의 후손이 된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강씨의 분포상황을 보면 총 1만 5428가구 중 절반 이상인 9,600여 가구가 평남 · 평북과 황해도 일대에 밀집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60년도 조사에서는 8,500가구에 4만 7266명으로 성별순위가 258성 중 제55위였으며, 그 가운데 절반이 넘는 4,000여 가구가 제주도에 집중해 있었고, 1985년도 조사에서는 1만 6763가구로 전국 가구 구성비 0.1 %로서 274성 중 제58위였다.

강씨(康氏)의 실질적인 시조(始祖)는 호경(虎景)의 14세 손으로 고려(高 麗) 고종(高宗) 때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오르고 신성부원군에 봉해진 충렬공(忠烈公) 강지연(康之淵)이다. 강씨(康氏)의 본관(本貫)은 신천(信川), 곡산(谷山), 재령(載寧)을 비롯하여 충원(忠原), 진주(晋州) 등 10여 본이 있는 것으로 전하나 현존(現存)하는 강씨(康氏)는 신천(信川)과 곡산(谷
山), 재령(載寧) 3본(本)이 대종(大宗)을 이룬다. <신천강씨대동보(信川康氏大同譜)>에 의하면 중시조(中始朝) 지연(之淵)은 고려 명종(明宗 : 고려 제 19대왕, 재위기간 ; 1170 ~ 1197)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1231년(고려 고종 18) 몽고군의 개경(開京) 침략으로 이듬해 강화도(江華島)로 천도(도읍을 옮김) 할 때 왕(王)을 호종하여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올라 신성(信城 : 신천의 옛 이름)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졌으므로 관향(貫鄕)을 신천(信川)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천은 황해도 중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 신천군은 단군신화가 서린 아사달산(阿斯達山) 당장경(唐藏京)이 있었던 곳이며, 한사군(漢四郡)을 거쳐 고구려 때에 승산군이 되었다. 고려 초에는 신주(信州)라 하였고, 성종(成宗) 때 방어사(防禦使)가 있었으며, 현종(顯宗) 초에 폐하여 황주(黃州)에 속하였다가 후에 감무(監務)로 되었다.

1413년(태종 13) 신천으로 개칭되어 현감(縣監)이 있었고, 1969년(예종 원년) 군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에 문화군을 합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신천군은 신천읍 외에 온천(溫泉) · 가련 (加蓮) · 두라 (斗羅) · 남부 (南部) · 용문 (龍門) · 문화 (文化) · 궁흥 (弓興) · 초리 (草里) · 문무 (文武) · 용진 (用珍) · 산천 (山川) · 노월 (蘆月) · 북부 (北部) · 가산 (加山) 등의 1읍 14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천강씨 대동보에 의하면 중시조 지연 [之淵]은 고려 명종때 문하시중[門下侍中;종1품벼슬]을 지내고 고종때 몽고의난 이 일어나 강화로 천도할 때 왕을 호종하여 호성공신[扈聖公臣]이 됨으로서 신성부원군 에 봉해졌다. <신성:신천의 옛이름>

그리하여 후손들이 본관을 신천[信川]으로 하였고 그이 6세손 윤성[允成]이 고려 충혜왕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 등을 지낸후 문하찬성사 [정2품 벼슬]에 올랐다.

그후 조선 이태조의 국구[國舅;장인]가 되어 상산부원군 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곡산[谷山]으로 하였다. <상산:곡산의 옛이름> 8세손 득룡[得龍]은 고려 공민왕때 삼사우사[三司右使]를 지내다가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뜻을 품고 관악산 의상대에 올라가 개성을 향해 통곡하니 이때부터 이곳은 연주대[戀主臺]라 불리웠고 그후에 태조가 그를 안릉부원군에 봉하고 안정공[安靖公]이란 시호를 내렸으며 후손들이 재령으로 낙향하여 살면서 재령을 본관으로 삼았다. <안릉:재령의 옛이름>
한편 전라감사를 지낸 영[永]은 신덕왕후의 4촌 오라버니로 왕자의 난때 제주도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일생을 마쳐 제주강씨[濟州康氏]의 입도시조가 되었다
신천 강 (康) 씨는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13,909 가구에 44,259 명으로 성씨내의 순위는 1 위이며 전체 본관별 인구 순위는 151 위이며, 강(康) 씨는 34,697 가구에 109,925 명으로 전체 성씨 순위는 53 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 선산군 고아면 대망동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수산리, 신산리

제주도 서귀포시 법환동, 하효동
황해도 재령군 청천면 청천리

제주도 남제주군 표선면 표선리, 하선리, 성읍리
신천    신천강씨대종회    02-2265-3574    서울 중 -충무로3-24-11(금용빌딩5층관리실) 제령    제령강씨종친회    02-566-7686    서울 -강남-삼성1-168(삼성빌딩5층)   
신천(康)    신천강씨    02-6436-7072    강남구 압구정동 490한양아파트 7-102호    lili2005@freechal.com
신천(康)    신천강씨    018-333-3690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49-6 현대 아파트 104동101호    kmkook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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