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씨의 본관은 현풍 , 청주, 선산, 해미, 봉산, 여미 등 6본이 전해지고 있으나 청주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현풍에서 분적된 것으로서, 현재는 현풍과 청주곽씨뿐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풍곽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에서 귀화한 곽경[郭鏡]으로 전한다.
현풍곽씨세보에 의하면 그는본래 관서지방의 홍농인[弘農人]으로 고려때에 들어와 1138년
과거에 급제하고 문하시중평장사, 금자광록대부 등에 이르러 포산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본관을 포산[苞山]으로 하여오다가 조선조에 와서 포산이 현풍현[玄豊縣]으로 개칭됨에따라 관향을 현풍으로 하게 되었다.
송 (宋)나라 귀화성씨(歸化姓氏)로 알려진 현풍 곽씨(玄風郭氏)는 중국(中
國) 관서(關西) 홍농(弘農) 출신인 곽 경(郭 鏡)이 고려(高麗) 인종(仁
宗 : 제 17대 왕, 재위기간 : 1122~1146)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문하시중평
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내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포산군(苞山
郡)에 봉해졌으므로 처음엔 관향(貫鄕)을 포산(苞山)으로 하였으나 조선조
(朝鮮朝)에 이르러 포산현(苞山縣)이 현풍(玄風)으로 개칭(改稱)됨에 따라
현풍(玄風)을 본관(本貫)으로 하게 되었다.
현풍은 경상북도 (慶尙北道) 달성군(達城郡)에 속해있는 지명(地名)으로 달성군은 대구로 편입되었다. 대구시 전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대략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집단끼리 세력통합운동이 일어나 성읍국가와 같은 소국(小國)을 형성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삼한시대에는 변한에 속했으며, 달구화(達句火) 또는 달구벌(達句伐)이라 하였다. 신라의 세력이 커지면서 5, 6세기경에 신라에 속하게 되었다.
신라의 군현체제가 실시되면서 달성군 일대는 위화군(火郡:지금의 대구, 가창면 일원)과 달구화현(達丘火縣)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군현 명칭 개정시 위화군은 대구현(大丘縣), 다사지현은 하빈현, 설화현은 화원현, 추량화현은 현효현, 치성화현은 해안현으로 각각 바뀌었다. 그리고 하빈현 · 화원현은 수창군 (壽昌郡), 해안현은 장산군(지금의 경산), 현효현은 화왕군(지금의 창녕)에 속하게 되었다. 현효현은 544년(신라 진흥왕 5)에 삼량화정이 설치된 군사적 중심지이다.
후삼국시대 달성군 지역은 신라를 차지하기 위하여 후백제와 고려의 각축장이 되었고, 927년(태조 10)에는 고려와 후백제군과의 유명한 싸움인 공산전투가 있었다. 고려 초기 지명 개정 때 수창군을 수성군으로 불렀고, 1018년(고려 현종 9)에 해안현과 함께 동경유수관의 속읍(屬邑)이 되었다. 현효현은 현풍현으로 고친 뒤 밀성군의 속현이 되었고, 하빈현과 화원현은 경산부(지금의 성주)에 속하였다. 1390년(고려 공양왕 2)에 수성군 · 현풍현에 감무가 파견되었고 , 1143년(고려 인종 21) 경산부의 속읍이었던 대구현에는 현령이 파견되었다.
1414년(조선 태종 14)에는 현풍현과 화원현을 제외한 수성현 · 해안현 등 달성군 지역 일대가 대구에 속하게 되었다 . 1419년(세종 원년) 대구현을 군으로 승격하여 달성이라 하였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고종 32)에 대구부 대구군, 1896년에 경상북도 대구군이 되었다. 임진왜란 후인 1601년(선조 34) 대구에 경상도 감영이 설치되면서 경상도의 정치 · 행정 · 군사 중심지가 되었다 .
1905년 성주군 노곡면이 현풍군에 편입되고, 1914년 부 · 군 · 면 통폐합 때 대구부 외곽지와 현풍군을 통합하여 달성군이라 하였다 . 1958년 대구시가 확장되면서 동촌면 · 공산면 · 가창면 · 성서면 · 월배면이 대구로 편입되었다가 1963년 동촌면을 제외한 4개면이 환원되었다. 1979년 월배면과 성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1년 7월 1일 대구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월배읍 · 성서읍 · 공산면이 대구로 편입되었다 . 1992년 화원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95년 3월 1일자로 달성군 전역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다. 관할구역은 화원읍 · 논공읍 · 다사읍과 가창면 · 구지면 · 옥포면 · 유가면 · 하빈면 · 현풍면 등 3개읍 8개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에 이름난 도덕가문으로서 충신 · 효자 · 열녀가 난 고장에 세워 표창하였던 정려 (旌閭)가 경북 달성군 현풍면에 12문(門)이 남아 전한다. 역대에 이름난 사람으로는 세조 때 익산(益山)군수를 지내고 청백리(淸白吏)로 이름난 안방(安邦)이 있고, 그의 현손(玄孫)에 주자(走字) 항렬의 8형제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그들은 영남 일대에서는 ‘ 현곽팔주 (玄郭八走) ' 라 알려졌다 . 그 중 부사(府使)를 지낸 월(越), 현감을 지낸 준( ), 군수를 지낸 율( )이 더욱 빼어났다.
특히 준( )의 집안은 준이 임진왜란 때 전사하자 두 아들 이상(履常) · 이후 (履厚)도 뒤따라 전사하였으며, 딸과 며느리도 자결하여 일문에 3강(三綱)이 나왔다.
이 밖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 홍의장군으로 유명한 재우(再祐), 고종 때 참찬(參贊) 등을 역임한 종석(鍾錫) 두 사람은 현풍곽씨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는다.
곽씨 인구는 1975년도 국세조사에서는 2만 6975가구로 전국 가구 구성비 0.4 %, 인구 순위는 249성 중 제36위였으며, 1985년의 조사에서는 3만 9147가구에 인구는 16만 3413명으로 순위는 274성 중 제37위였다.(0.4%)
현풍 곽(郭) 씨는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43,626 가구에 140,283 명으로 성씨내의 순위는 1 위이며 전체 본관별 인구 순위는 59 위이며, 곽(郭) 씨는 58,396 가구에 187,322 명으로 전체 성씨 순위는 37 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답곡리
전남 진도군 군내면 세등리
충남 금산군 남일면 초현리
경북 달성군 현풍면 일원, 유가면 한정동
전북 김제군 만경면 만경리
경북 달성군 구지면 내동
전남 고흥군 남양면 중산리
경북 선산군 장천면 상림동
현풍 현풍곽씨중앙화수회 02-2234-0872 서울 중 -무학-12-1(홍익3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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