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세조 극청의 아들 상귀 (尙貴)가 고려조에서 판관(判官)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인(璘)은 부사(副使)를 역임하여 동정(同正) 근(謹)과 함께 가맥(家脈)을 이어 왔으며, 7세손 혁(革)은 1401년(태종 1)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을 거쳐 세종 때 홍주 목사(洪州牧使)를 지냈다.
한편 중봉(重峯)은 조 헌(趙 憲)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연마한 응환(應晥: 세득의 아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을 따라 의병이 되어 아우 응탁(應晫)·응호와 함께 여러 전투에서 왜군(倭軍)을 격퇴시키고 금산(錦山) 전투에서 용전(勇戰)하다가 700의사(義士)와 함께 순절하여 향리(鄕里)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그의 아들 숙(潚)은 이 괄(李 适)의 난(亂) 때 공주(公州)로 피난간 인조의 시중을 극진히 하여 난이 평정된 후 왕이 그의 공적을 치하하여 벼슬을 내리고 공신(功臣)에 책록(策錄)하려 하자 이를 극구 사양하므로 인조(仁祖)는 그의 고향을 <조왕동(助王洞)>이라 부르게 하였다.
그의 아우 위(瑋)는 별제(別提)를 지냈고, 응호의 아들 찬(璨)은 좌랑(佐郞)을 역임하여 현감 삼방(三邦), 부사(府使) 이점(以漸), 군수(郡守) 이척(以倜) 등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