字는 오겸 (五兼), 號는 호리(湖吏)이다.
조선 세종때 출생하였으며,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냈다고 한다. 밀양대씨세보(密陽大氏世譜)에
의하면 그는 밀양대씨(密陽大氏)의 중시조인 대탁(大鐸)의 손자라고 하였다.
본관은 대산 (大山:김해지방) 단본이다.
원래 발해국(渤海國) 시조 대조영(大祚榮)의 성이다.
발해가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여 융성하였으나 14대 228년으로 거란(契丹)에 패망하자, 후예인 대광현(大光顯)이 926년(고려 태조
9) 고려에 귀화하여 왕(王)의 성씨를 하사받고 왕계(王繼)가 되었는데, 옛날 발해의 대씨와 오늘날의 대씨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충남 부여군 (扶餘郡)에 있던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대산(大山)이다. 영광(靈光)과 인접해 있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전국에 12 가구가 있었는데, 60년도 국세조사에서 인구 264명으로 성별
순위는 258성 중 제168위, 85년도 조사에서 274성 중 제178위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