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씨는 원래 중국의 성씨로 주 (周)나라
때 사질(史侄)이라는 벼슬이 있었는데 그 벼슬의 이름을 따서 사씨로 성을
삼았다고 한다.
청주 사씨의 시조 사요는 중국 산동성 청주 사람으로 명나라의 개국공신이다.
그가 예부상서에 오르자 소인의 모함을 받자 고려 공민왕(31대)때 우리나라로 망명을 하여 파주에 정착하여 살았다. 후손들이 본관을 중국의
청주로 하였다.
사씨 (史氏)는 중국 경조(京兆:협서성
관중도 장안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 로 주(周)나라 때 사람인
사질의 후예(後裔)가 관직(官職)의 이름을 따서 성으로 삼은 것이 시초(始初)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씨(史氏)는 시조 사 요(史 繇)가 고려(高麗)에
망명하여 경기도 파주군 월롱면 위전리(京畿道坡州郡月籠面葦田里)에 정착(定着)한
것이 시초가 된며, 후손들이 그의 출신지인 청주(靑 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사씨의 본관(本貫)은 청주(靑州) 외에도 거창(居昌)
· 경주 (慶州) · 파주(波州) · 청송 (靑松) · 충주 (忠州) 등
16본이 있는 것으로 문헌(文獻)에 전해지는데, 거창 사씨(居昌史氏)는 고려
예종(睿宗) 때 귀화하여 서북면 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서 여진(女眞)의 침입을
토벌하고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지낸 후 거창(居 昌)에 뿌리를 내린 사
영(史 榮)의 후예로 알려졌으며, 청송 사씨(靑松史氏)는 청주 사씨의 시조
사 요(史 繇)가 우리나라에
건너올 때 중국에 두고 온 둘째 아들 직(直)의 8세손인 세용(世用)이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명(明)나라 원군으로 출정했다가 난이 평정된
후 조선(朝鮮)에 귀화하여 경북 청송에 터를 잡아 본관을 청송으로 칭관(稱貫)해
왔다. 그러나 청주 사씨와 한 뿌리의 자손임을 알고 청주로 합본(合本)했다고
한다.
청주 (靑州)는 중국 화북지방에 인접한
지명으로 고대 중국을 아홉으로 나누었던 구주(九州)의
하나였으며, 지금의 산동성 일대이다.
시조의 아들 중 (重)이 세종때 경상좌도
관찰사를 지내고 1429년 대마도 정벌에
출정했다가 전장에서 장렬하게 순절하여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아들 극명(克明)은
장례원 판결사를 역임하여 평택 현감을 지낸 의담(義淡)과 함께 가문의 기반을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