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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덕성 (丁德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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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정덕성 (丁德盛)은 원래 당나라
사람으로 당나라 문종 때 대승상을 지냈으며 무종 때 대양군에 봉해졌고, 853년(신라
문성왕15 · 당 선종 7) 군국 사로 직소하다가 우리나라의 압해도(지금의
전남 신안군 압해면)에 유배되어 온 것이 우리나라 정씨(丁氏)의 시초라고
한다 따라서 <압해>는 곧 우리나라 정씨의 발상지로 볼 수 있다.
중시조 정연방(丁衍邦)은 고려 때에 상호군(上護軍)을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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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정씨는 모두 정덕성
(丁德盛)의 후손으로 전하며, "정씨대동종안보(丁氏大同宗案譜)"에는
모든 정씨를 압해정씨(押海丁氏)로 통일하고 나주, 선창원, 후창원, 영광,
의성의 5파로 나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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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慶尙南道) 남쪽에 위치하는
산업도시이며 도청소재지로 고대에는 금관가야(金官伽倻 : 경상남도 김해지방에서
부족국가를 형성하였던 6가야 중의 하나)에 속했었다. [한국지명연혁고(韓國地名沿革考)]에
의하면 창원(昌原)은 본래 의창현(義昌縣)과 회원현(會原縣)의 합명(合名)이다.
의창(義昌)은 신라 때 굴자군(屈自郡) 또는 의안군(義安郡)으로 불리우다가
1282년(충렬왕 8)에 의창(義昌)으로 개칭되었고, 회원(會原)은 신라
때의 골포현(骨浦縣)을 경덕왕(景德王 : 제 35대 왕, 재위기간 : 742
∼ 765)이 합포(合浦)로 고쳤다가 고려조에 와서 회원(會原)으로 개칭하여
1413년(태종 13)에 이르러서는 두 현(縣)을 합하여 창원부(昌原府)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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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종 때 환 (煥) · 황 (黃) 형제가
학문으로 이름이 있었고, 선조 때 무장 춘(春) · 대수 (大水) 등은 임진왜란
때 큰 전공을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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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창원계
노위공파(虜衛公派)
부승공파(副承公派)
사정공파(司正公派)
후창원계
직장공파(直長公派)
창랑공파(滄浪公派)
현령공파(縣令公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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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인구조사에서 14,786명(선
창원 포함)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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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丁若鏞) : 실학을 집대성
정극인(丁克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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