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주씨 시조는 고려의 절신인 주유 (周瑜)이다.
유는 고려 말에 진사(進士)를 지내다가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의
충절로 벼슬을 마다하고 초계현에 은거하여 세칭[포번삼절사]로 불리웠다.
본관은 상주 (尙州) · 초계 (草溪)
· 함안 (咸安) · 장흥 (長興) · 삼계 (森溪) 등이 전하나, 모두
동원분류(同源分類)라는 것이 통설이다.
도시조(都始祖)는 신라 때 당(唐)나라로부터 귀화했다는 주황(周璜)으로 전한다.
《초계주씨세보(草溪周氏世譜)》에 의하면, 그는 원래 당나라의 한림학사로 ‘ 오계지란 (五季之亂) ' 을 피하여 신라에 망명하였고 , 그의
후손 흥인(興寅)이 신라 말기에 아한(阿干) 벼슬에 올랐으며, 후에 초계 · 함안 · 장흥 · 삼계 · 풍기 (豊基)의 6파로 갈리게 되었다고
한다.
상주 (尙州)는 경상북도(慶尙北道) 서쪽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삼한시대(三韓時代)에 진한(辰韓)의 영토였으나
185년(신라 별휴왕 2, 고구려 고국천왕 7) 사벌국(沙伐國: 혹은 사불국)으로
독립해 오다가 신라(新羅) 첨해왕(沾解王: 제 12대 왕, 재위기간: 247
∼ 261) 때 정벌되어 상주(上州)로 고쳐 군주(君主)를 두었다. 진흥왕(眞興王)이
상락군(上洛郡)으로 고치고 신문왕(神文王) 때 다시 사벌주(沙伐州)로 개칭되었다가
경덕왕(景德王) 때 와서 상주(尙州)로 하는 등 많은 변천을 거쳐 고려(高麗)
성종(成宗) 때 귀덕군(歸德軍)이라 하여 영남도(嶺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현종 3) 다시 상주안무사(尙州安撫使)로 고쳐서 8목(牧)의 하나로
정하였다가 조선(朝鮮)이 개국(開國)하여 관찰사(觀察使)를 두었으며 1910년
상주군(尙州郡)으로 개칭되어 함창군(咸昌郡) 일원이 편입되었고, 1988년
시(市)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주세봉 (周世封)은 고려 광종 때 지주사에
주연(周演)은 현종때 병부시랑에 주겸(周謙)은 예부랑중에 각각 이르러 고려시대에
이름을 남겼다.
이밖에 공민왕때 예부상서에 이른 주세후(周世侯)와 같은시대 이부상서를 지낸 주경(周璟) 부자는 고려의 절신이었다. 이들은 이성계의 득세로
고려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할 때 벼슬을 버리고 경남 산청의 배양촌에 은거했다.
주유(周瑜)는 고려 말에 진사(進士)를 지내다가 1392년(태조 1)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의 충절로 길재(吉再), 김자수(金自粹) 등과
함께 벼슬을 마다하고 내천 초계현에 은거하여 세칭 <포번삼절사>로 불리웠다.
김해로 낙향한 문하시랑을 지낸 주관(周琯) 등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킨 선비들이다.
조선시대의 주세붕(周世鵬)은 1522년(중종 17년) 생원(生員)으로 별시문과에 급제한 세붕은 승문원 정자로 사가독서를 한 후 명종 때 부제학(副提學)
· 호조 참판 (戶曹參判)을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으며, 한국 최초의 사설교육기관인 백운동서원을 설립하여 도학(道學)의
학풍을 수립한 교육자로서 일생동안 대사성(大司成)을 3번 역임한 청백리이다. "태평곡(太平曲)" "육현가(六賢歌)" 등
4편의 장가(長歌)와 "군자가(君子歌)" 등 8편의 단가(短歌)를 남기는 등 시가(詩歌)에 능했다.
그의 아들 주박(周博)은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선조 때 교리(校理)를 지냈다.
일제의 압제에 항거하며 우리말과 글을 갈고 다듬어 이를 널리 펴는데 일생을 바친 선구자 주시경(周時經)은 1910년 최초의 국어사전 "말모이"의
편찬에 착수, 흩어진 우리말을 찾는 작업을 시작했으나 완성을 보지못하고 36살의 젊은나이에 급환으로 숨졌다. 그러나 "말모이"의
초고는 해방후 한글학회가 "우리말 큰사전"을 완성하는 데 초석이 된다.
이 밖에 경종 때의 의학자로 "의문보감(醫門寶鑑)"을 저술한 주명신(周命新)이 있다
도은공파 (陶隱公派) : 20세손 주유(周瑜)를
중시조로 한다.
목천파(木川派)
박사공파(博士公派) : 주유의 동생 주선(周璿)을 중시조로 한다.
시랑공파(侍郞公派) : 주관(周琯)을 1세조로 한다.
창의공파(倡義公派) : 주관의 8세손 주선남(周善男)을 중시조로 한다.
판서공파(判書公派) : 19세손 주세후(周世候)를 중시조로 한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상주주씨는 남한에 총 5,164가구, 21.71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